始祖(시조) 金侁(김신)의 맏아들 金世宥(김세유)는 副元帥(부원수)를 지냈으며, 次男(차남) 金光宥(김광유)는 戶曹典書(호조전서)를 歷任(역임)하였다. 金光宥(김광유)의 曾孫子(증손자)金摯(김지)는 1370年(恭愍王19年)文科(문과)에 及第(급제)하고 翰林院學士(한림원 학사)를 거쳐 사의대부(司義大夫),左司諫(좌사간)을 지냈으며,高麗(고려)가 亡(망)하고 朝鮮(조선)이 開國(개국)하자 太宗(태종)이 嘉善大夫(가선대부)로 禮曹參判(예조참판)을 除授(제수)하여 그를 불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忠節(충절)을 지켰다.
朝鮮(조선) 宣祖(선조) 11年文科(문과)에 及第(급제)한 金希雍(김희옹)은 漢城府判尹(한성부판윤)과 吏曹判書(이조판서)를 지냈고,金鑑(김감)은 金世宥(김광유)의 11世孫(세손)으로 光海君(광해군)때 登科(등과)하고 禮曹正郞(예조정랑)을 거쳐 聖節使(성절사)의 書狀官(서장관)이 되어 明(명)나라에 다녀와 吏曹參議(이조참의)를 歷任(역임)한 後(후) 1636年(仁祖14年) 丙子胡亂(병자호란)이
일어나자 谷城(곡성)에서 義兵將(의병장)이 되어 아들 金南植(김남식), 金南億(김남억) 兄弟(형제)와 함께 눈부신 活躍(활약)을 했다.
그外(외) 人物(인물)로는 金南億(김남억)의 6世孫(6세손)으로 兵曹參判(병조참판)을 지낸 金彦章(김언장)과 知中樞府事(지중추부사) 김언태(金彦兌), 左承旨(좌승지)金彦翊(김언익)이 有名(유명)했고,金彦(김언익)의 아들 金義興(김의흥
)은 漢城府左尹(한성부좌윤)을 歷任(역임)하여 副護軍(부호군)을 지낸 金平[김평 :金彦太(김언태)의 아들], 僉知中樞府事(첨지중추부사) 金大輝(김대휘), 金仁海(김인해)와 함께 家門(가문)을 빛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