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는 내동기들

봉화, 청량산 가는 길(진구/作).

아까돈보 2011. 4. 17. 23:54

 

 

 

 

 

 

 

 

 

 

 

청량산 가는길,

비내리 마을 가는길,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오랫만에 한분의 신부님을 만나기위해

이 길을 나섰다.

 

언제나 같은 마음이지만

청량산 가는길,

비내리 마을 가는길은

호젓하고 정겹다.

 

요즈음 같으면 참꽃,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눈 녹아 흐르는 강물은 유난히 푸르다.

 

오늘도 하늘은 쪽빛으로 푸르고

굽이진 산길은 고향가는길 같이 정답다.

 

언젠가 < 나의 문화유적 답사기> 로 잘알려진

유 홍준 전 문화재 청장 교수가

전국을 함께 답사다니는 관광버스 기사님께

전국을 다녀보니 제일 좋은곳이 어디?

하고 물었더니 바로 청량산 가는길,

비내리 가는 명호 ,  이 길을 꼽았다는 소릴 들었다.

무슨 기준이건간에 그렇게 꼽힐만큼 이 산길, 계곡길이 좋고 좋다.

 

언젠가  한문학자로 유명한 지곡서당  청명, 임 창순 선생님도

중국의 장강구경이 좋다지만  나는 여기가 더 좋다고 했었다.

 

또한가지 나에게 의미있는건

이곳 자그마한 산골마을 비내리 마을에

정 호경 루도비꼬 신부님이 농사짓고 있기에

더 가 보고 싶은곳이 된다.

 

한때 소위 오 원춘 사건으로 얘기되는 세상의 소용돌이 시절,

그 중심인물이었던 가톨릭농민회 지도신부였던 그가

조용히 이곳에 정착하여 농사짓고 글쓰고 유유자적하며

칠순 노후를 보내고 있는것이다.

 

언젠가 건강이 좋지않아 졌다는 소문이었는데

칠순 기념으로 해안 7 천 5 백리 길과

10 여개의 큼직큼직한 섬을

도보로 걸어서 40 일을 완주했다하니

그것이 헛소문이었던듯 건강하다.

 

청량산 입구 허름한 식당에서

산채 비빔밥을 함께 비벼먹고

맛있다는 막걸리 두 댓병을 함께 비우며

시시콜콜, 세월을 넘나들며 추억담으로 즐거웠다.

 

갖고 있던 재산이란 재산은 이미다 정리했고

쓴책의 인세조차 유증 증여해 버리고

오늘은 나에게  장기 기증 증서를 보여주며

죽으면 내 몸조차 다 내어주게 되었다면서 웃으신다.

 

내가 디카를 들이대니까

초상권 침해라면서 손사래를 처대니

사실 이런 얘기 하는것도 폐가 될것 같다.

 

어찌 되었건 간에

우리는 이렇게 세월을 살았고

또 세월을 보낼것이다.

 

그는 청량산 뒤안 비내리 마을 어름에서

나는 안동 호반 강변 진모래 득심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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