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麗時代(고려시대)에 都指揮使(도지휘사)를 지낸 李芳實(이방실)은 高麗(고려)恭愍王(공민왕)때 毛居敬(모거경)等이 4萬(만)의 紅巾賊(홍건적)을 이끌고 鴨綠江(압록강)을 건너 侵入(침입)해 오자 安祐(안우)等(등)과 함께 敵(적)을
擊退(격퇴)하여推誠協輔功臣(추성협보공신)에 封(봉)해지고 樞密院副使(추밀
원부사)가 되었다.뒤에 紅巾賊(홍건)적이 다시西海道(서해도)에 侵入(침입)하자 이를 물리친 功(공)으로 玉帶(옥대)를 下賜(하사)받았다.1361年에 20餘萬(여만)의 紅巾賊(홍건적)이 侵入(침입)하자 都指揮使(도지휘사)로서 安祐(안우) 金得培(김득배) 等(등)과 함께 鷄州(개주), 延州(연주) 等地(등지)에서 敵(적)을 邀擊(요격)했으나 安州(안주),折嶺(절령)에서 慘敗(참패), 서울이 陷落(함락)되었다.다음해 西北面都指揮使(서북면도지휘사)가 되어 摠兵官(총병관) 鄭世雲(정세운),崔瑩(최형)等(등)과 함께 20萬(20만)의 大君(대군)으로 서울을 包圍(포위),敵(적)을 殲滅(섬멸)하고 잔적을 鴨綠江(압록강) 밖으로 擊退(격퇴)해 武功(무공)으로서 家門(가문)을 빛냈다.
朝鮮時代(조선시대) 大司成(대사성)에 이른 李美(이미)를 비롯, 大司憲(대사헌
) 李仁亨(이인형), 執義(집의) 李義亨(이의형), 戶曺參判(호조참판) 李世應(이세응) 等(등)의 官職者(관직자)를 輩出(배출)하였다. 李美(이미)는 1453年文科(문과)에 及第(급제)하고 鎭海(진해)에 赴臨(부임)하여 善政(선정)을 베풀어 名官(명관)으로 이름났고 여러 官職(관직)을 거쳐 大司成(대사성)에 이르렀으다. 李仁亨(이인형)은 1468年戊年文科(무년문과)에 壯元(장원), 北評事(북평사)를 지냈으며 뒤에 全羅道觀察使(전라도관찰사)等(등)을 거쳐 大司憲(대사헌)에 이르렀으며 文章(문장)이 뛰어났다. 李世應(이세응)은 1496年司馬試(사마시)에 合格(합격),1501年 文科(문과)에 及第(급제)한 後(후)淸宦職(청환직)을 거쳐 檢詳(검상), 舍人(사인)을 歷任(역임)한 後(후)1506年 中宗反正(중종반정)에 加擔(가담),靖國功臣(정국공신)4等으로 咸陽君(함양군)에 封(봉)해졌으며 그後(후)兵曺參知(병조참지),工曺參議(공조참의),江原道觀察使(강원도관찰사),戶曺參判(호조참판),平安道觀察使(평안도관찰사)에 이르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