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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안휘성 시디촌 (진구/作) (4).

아까돈보 2012. 1. 26. 20:40

 

 

 

 

 

 

 

 

 

 

 

 

 

 

 

 

 

 

 

 

 

 

 

 

시디촌은 안위성  남부의 이현에 속한 마을로

홍춘에서 약 18 Km 떨어진 곳으로 2000년에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원래  西川,西溪 라 했으나

역참에 해당하는 포체소 ( 鋪遞所  )가 설치된 후

현재의 시디 , 서체로 고쳤다고 한다.

 

여러 입향 설화를 갖고있는데

당나라  昭宗 의 아들  李曄 의 아들이 변란으로

이곳으로 도망을 와 성을  호 ( )씨로 고쳐 입향했다는데

  씨의 집성촌으로 중국의 여늬 동성마을보다 더 특색있는 마을이 되었다.

이곳 출신 큰 인물인

 湖 文光 을 기리는 패방 ( 牌坊 )에서도 그것을 느낄수가 있었다.

 

이 마을은 전란이나 외부의 변란을 별로 겪지 않아

비교적 온전하게 명, 청대 전통가옥 124 채가 잘 보존되었고

특히  敬愛堂 건물을 비롯해 대규모 사당도 3 채가 보존되고 있었다.

 

주희 ( 朱 熹 )의 대형  忠, 孝, 廉, 節 넉자의 편액이 보관되었었는데

문화대혁명시기에 없어지고  孝  한자만

마을사람 곡식창고 덮개로 숨겨져 온전히 남았다고 한다.

 

홍춘마을에서 이미 살펴 보았지만

이곳도  徽州 의 전통인 흑색기와, 백색담장,마두담장

그리고 장식적인 문루, 화려한 목공예 의 문양장식등이

오히려 더 현란하다고 느껴졌다.

 

아래 사진에 붙혀본 문고리 장식과 창호,

그리고 담장에 박아넣은 장식등은

도무지 장인의 정성을 짐작키 어려울정도로

정밀하고 아름답다.

 

휘주 상인들이 재물을 아끼지 않고 자기고향에

이러한 아름답고 화려한 집을 짓고

당시의 유가적 가치관을 곳곳에 표현해 둔 것은

우리 나그네의 눈길로는 이해하기 힘들고

며칠을 여기에 묵으면서 하나 하나 해설을 들으며

이야기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엽비근> 이라고 벽에 낙엽잎을

 아래로 떨어지도록 조각해 넣은것만해도

뿌리로 돌아가는 낙엽의 의미를 빌려

휘주 상인들이 곳곳에서 벌어들인 재물이

고향집으로 들어오라고 기원하는 염원에서 그렇게 했다고 하니

조각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가 참 경의롭기까지 하다.

 

나무에, 돌에, 벽돌에, 쇠붙이에,

의미와 염원을 담아 새기고 꾸미고

또 그렇게 정성을 들여 살았을 이곳 사람들의

삶과 세월이 수백년 지난

이 나그네에게도 그대로 전해져 온다.

 

이곳 시디마을은 수년전 안동 하회마을과

자매관계로 인연을 맺고 대표적 전통마을로서 교류를 시작했는데

서로 어려움을 가지고 있어 활발하지는 못한것 같은데

 敬愛堂 에 삥둘러 앉은 우리는 

마음으로 이곳과의 교류를 되새겼다.

 

 

 사진을 찍고 보니 이상하게도

  ,   보이는 사진에는

사람이 외로와 보이는것은 우연이겠지만

오늘의 세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것 같아 우스웠다.

 

 藏風, 聚氣, 山水好 의 전통풍수에다

 九房 四家 의 겹겹으로 배치된 집안구조

남쪽으로는 문을 내지않는 전통등이 이채롭고,

 

이곳 아낙네들이 시집와서 겪는 신고가

우리 전통사회와 그리 다르지 않고

특히 이곳 상인들이 시집온 아내를 집안에 두고

객지에 떠돌다 돌아와서 아이만 만들고 떠나

시집온날 부터 온전히 정려문을 만들어줘야할 정도로

가문에 헌신적으로 희생을 강요당하는 얘기들은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야기 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런 희생을 딛고

이 마을에는 인물이 많이 나고 재물도 아주 많이 쌓여

중국의 전통 마을의 전범이 되고 있는데

이곳 시디마을 의 인문,정신세계가 명,청대의 중국을 이해하는데

그 어느곳보다 확실하고 분명하다고 보면

시디를 알면 중국을 안다 할것이다.

 

마치 안동을 보고 알면, 한국을 알수있고

한국을 알려면

안동을 와서 보면 된다는 말과 같다 할 것이다.

 

돌아서는 길에 만난 대문의

 十星級文明戶 의 명예가

오늘의 자랑이라는데

허, 허, 허...

나는 그저 웃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