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8일 저녁 하노이공항에 도착하여 하룡베이로 이동하여
여장을 풀었다.
이튼날 하롱베이 해상을 구경하고 다음날 하노이 시내 관광에
나섰다.
이동중 들판에 비닐로 군데군데 막아놓은 논이 보인다.
우리나라는 오리를 집어넣어 유기농은 하는데 여기는
오리가 못들어가게 비닐을 막아둔다.
여기는 농토가 많고 3모작 가능지는 2모작, 4모작가능지는
3모작을 하여 휴식기를 활용하며, 볓짚을 현장에서 태워서
거름으로 쓰고 풀임을 갈아서 비료로 사용하므로 농약이나
비료는 사용하지 않는다.
시내에는 일방통행이 많고 차선구분이 명확하지 않으나 서로가
여유공간을 이용하면서 조심스럽게 운행을 하여 사고가
많지않다.인도에는 오토바이 유료주차장이 많이 있다.
호지민광장에는 주석 호지민의 시신을 보관하나 개방은 하지
않는다. 중국어로 호지명은 빛을 가져다준 사람이다.
호지민은 독신으로 검소하게 살았으며 프랑스군이 사용하던
발전실에서 살면서 차량이 3대가 있었으나 거의 사용하지 않고
철마(자전거에 나무타이어)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스승은 공산주의를 가르쳐준 스탈린과 정약용의 목민심서다
좌우명은 자유와 독립보다 중요한것은 없다.
유언 : 1,무덤을 만들지 마라.(북부,중,부,남부 세곳에다 뿌려라)
2, 이적행위자를 죽이지 마라(상처가 너무오래 남는다)
3, 가난하고 불쌍한사람을 사랑하라(모두가 국민이다)
유품 : 미화300달러,페타이어슬리퍼1켤레, 목민심서 1권
베트남에는 꽃이 두번피고, 열매가 두번씩 열리는 계절을 가지고
있으며, 국민들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을 이긴나라 라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단다.
씨클로투어로 시내관광을 하였다
씨클로는 우리나라의 가마와 같이 귀족들이나 결혼식 같은
행사시에만 사용하던것을 현재는 관광용으로 개발하여
퇴직공무원, 현직교사들도 부업으로 하고 있다.
조장이 있어 조장자전거는 경보용벨이 달려 있다.
알송달송 한마디
호지민의 집 옆에 대피호가 있는데 월남전 당시에 미국이 핵전쟁을
거론하자 북한의 김일성이 공산국가로 같이 살아남기 위하여
무상으로 시설해 주었다고 한다.
호지민이 측근들에게도 말 못할 사연이 있을때 집앞의 연못가에
나무하고 얘기를 많이 하다가 보니 나무뿌리가 사람모양으로
불룩불룩 솟아 났다고 하네요
야간에는 수상인형극(연못고기잡이:공식명칭아님)을 구경하였다
연극을 재미있게 보면 예술가, 재미없게 보면 사업가 란다.
"베트남사람들이 하회탈춤을 보고 듣는것 같이 보고 들으소"란다.
이것을 들으니 우리탈춤도 외국인공연시 중간설명이 필요할것 같다
우리나라의 화산이씨의 선조는 베트남 민족이고 베트남에
행사시 서로 교류를 한단다.
대한민국 지형이 권총모양이기에 세계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불안해 하고 있다. 그러나 방아쇠부분이 인천 부분이라서
전쟁발발의 결정권은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여행중 에피소드
마지막날 아침에 가방을 방에다 두고 방키를 반납한후
로비에 있다보니 일행들이 가방을 끌고 차량으로 이동을
하길래 찾아보니 가방이 없네 그래서 다시 방으로 가서
가방을 가지고 내려 오면서 생각을 하니 이런 기억력
가지고 여행을 더 다녀야 할지 고민이다.
가이드의 덕담 1, 현재의 백배만 더 부자되세요.
2, 자식 잘되기를 원하는 만큼만 기대하세요
3, 99세까지 88하게 사시고 일년에 네번씩만
해외여행을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