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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품격 / 개와 정승 - 오토.

아까돈보 2013. 3. 19. 15:21

 

 

13-1

 


◆부자의 품격, 개와 정승

 

1.
말 없는 나무들의 세계는 말 많은 인간세계를 부끄럽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나무들의 세계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다음의 이야기도 그 중의 하나다.

가뭄이 들면 나무들은 ‘더불어 사는’ 놀라운 지혜를 발휘한다.

우물가에 가까이 서 있는 나무들이 먼저 자신의 열매를 떨어뜨린다.

물가에 가까이 있는 나무들은 자신의 열매를 충분히 간직하고

지킬 수 있지만 가능한 물을 적게 먹고

그 대신 주변의 다른 나무들에게 물을 양보하기 위해서

스스로 열매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인심(人心)으로는

그러한 목심(木心)을 헤아리기도 어렵다.

만약 인간이 그러한 처지에 있다면 어떨까?

물가에 서 있는 자들은 그것을 기회로 물을 사재기하고 투기하고

뒤에 서 있는 사람들,

주변의 사람들의 목줄을 조이면서 축재의 기회로 삼을 것이다.

목이 마르면 마를수록

더욱 목마른 사람들의 약점을 더 파고들 것이다.

2.
오늘 우리 사회는 양극화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이 일층 심화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

마치 맹수들이 지배하는 것과도 같은

 ‘정글 자본주의’라는 이야기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점은 분명하게 이야기하자.

맹수들의 세계는 치부를 위해서,

또는 냉장고에 고기를 넣어두기 위해서

다른 동물을 죽이는 일은 없다.

배가 고플 때만 사냥하고

배만 부르면 결코 약한 동물을 죽이는 일은 없다.

그러나 인간세계는,

축재의 세계 - 좋은 말로 재테크의 세계는 그게 아니다.

돈이 싸이고 또 싸여도 사냥을 그만 두는 일이 없다.

더욱 배가 고파한다.

옛말에 ‘쌀독에서 인심(人心)이 나온다’는 말이 있었다.

재물에 여유가 있으면 인심도 풍족해진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오늘날은 어떨까?

쌀은 쌓이고 쌓여도 인심은 나오지 않는다.

돈을 잘 버는 부자는 많지만 인심(人心)이 나오는 부자는 드물다.

가진 만큼 마음도 여유가 있고 풍족해야할 것이지만

오히려 더 돈에 굶주리고 게걸스럽다.

품격 있는 부자,

 존경받는 부자가 드문 이유도 다른 이유가 아닐 것이다.


3.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말이 있다.

부자의 품격을 일러주는 경구다.

사람다움을 잃지 않는 부자의 길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경구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는 돈을 잘 버는 부자는 많고 많지만

돈을 잘 쓰는 부자, 정승처럼 쓰는 부자를 보기는 어렵다.

진정한 부자,

품격이 있는 부자라면

돈을 벌기도 잘 해야 하지만 잘 써야한다.

두 가지를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남보다 좋은 머리를 가졌으면 가진 만큼 잘 써야 한다.

많이 알면 알수록 많이 행해야 한다.

남보다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남보다 더 많이 나누어야 한다.

가진 값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진 자의 의무다.

또한 가진 자의 인생이 사는 길이기도 하다.

만약 가진 값을 못한다면,

기껏 벌어서 개처럼 쓰고 만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갖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부(富)는

 오히려 자기 인생의 족쇄가 되고 개처럼 쓰기에 죄업이 된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죄업이라는 말이 아닐 것이다.

가지면서도 나누지 못하는 죄업, 가진 값을 못하는 죄업,

그 죄업이 너무나 크기에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에 비유된 것 아닐까?

/배영순(영남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