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언 가풍 (直言 家風)
한국의 선비 집안 가운데 유달리 직언(直言)을 많이 하는 유전인자가 있는 집안이 있다.
안동의 '내앞(川前)'에 사는 의성 김씨 집안이다.
이 집안 중시조인 청계공이 정한 가훈도 파격적이다.
'신하가 됐으면 부서지는 옥이 될지언정 온전한 기왓장으로 남지 말아라(爲人臣子 寧須玉碎 不宜瓦全)'. 임금에게 직언해서 부서지는 옥이 되라는 말이다.
'곧은 도리를 지키다 죽을지언정 도리를 굽히고 살지 말라(人寧直道以死 不可枉道以生).
' '벼슬은 정3품 이상 하지 말고 재산은 300석 이상 하지 말라.'
'선비 집안에는 금부도사(대검찰청 검사)가 3번은 찾아와야 한다
.' 실제로 이 집안에는 임금이 보낸 금부도사가 영남 사림(士林)의
의견을 들어보기 위하여 3번이나 찾아왔던 적이 있다.
청계공의 아들인 학봉(鶴峯)은 사간원(司諫院)의 정언(正言)이라는 벼슬에 있을 때
'요순걸주론(堯舜桀紂論)'의 직언으로 유명했다.
선조 임금이 '나를 선대의 군왕에 비교하면 누구와 비슷한가?
' 하고 언관(言官)들에게 물은 적이 있다. 한 언관이 '요순과 같은 성군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학봉은 '요순도 될 수 있지만 걸주도 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성인(聖人)인 체하고 직언을 멀리하는 병통이 계시니 이것은 걸주가 망한 까닭이 아니겠습니까' 하였다.
임금 면전에서 대놓고 돌직구를 날린 셈이다.
학봉의 손자인 김시추(金是樞)는 당대의 실세 권력자인 이이첨의 목을 베어야 한다(請斬李爾瞻疏)는 내용의 '영남만인소(萬人疏)'(1621)의 소수(疏首)가 됐다.
소수는 만명이 올린 상소문의 제일 앞에 서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차하면 제일 먼저 죽어야 하는 역할이 '소수'이다.
숙종 연간에는 '청음서원 훼파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에 안동은 핍박받는 야당 도시이자, 남인의 본거지였다.
여기에 집권당 노론의 핵심 인물인 청음 김상헌을 기념하는 서원을 세우려고 하자 남인들이 들고일어났다.
신축 중인 청음서원의 대들보에다가 밧줄을 걸어 건물을 무너뜨려 버린 것이다.
학봉의 6세손인 김몽렴(金夢濂)이 제일 앞장섰다.
'川金錚錚(내앞 김씨들은 쇳소리가 난다)'이라는 평판은 이렇게 얻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