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는 내동기들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에 있는 겸암정사 - 오토산.

아까돈보 2015. 7. 13. 23:23

 

 

사진이 잘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8356

 

 

겸양의 도를 배울수 있는곳 겸암정사

도산서원 거경대학에서 7월 12일 하회마을 주변으로 우산쓰고 수련을 떠났다.

9호태풍 '찬홈'이 서해안을 통과하는 기간이라 비가 조금 내리고 있었으나

뜨거운 여름 날씨보다는 오히려 좋았다.

 

첫번째로 들른곳이 겸암 류운룡(1539~1601)선생이 학문연구와 제자를 가르치던 곳

겸암정사(謙菴精舍)를 찾았다. 조선 명종22년(1567)에 29세때 하회마을이 보이는

남쪽 절벽위에 지었고 스승에게 서재 이름 지어주기를 청하자 퇴계는 주역의 지산겸

(地山謙)괘의 '겸'자를 취하여 '겸암정'이라 써주었고 이때부터 자신의 호를 삼았다.

그 까닭은 겸암의 성품이 지나칠정도로 깔끔하고 감정을 드러냄이 항상 솔직하여

결백스러운 성미를 가져서다  스승이 써준 겸양의 기대에 부응하여 자기수련과

 수양으로 너그러운 포용성과 여유로운 도량으로 변화시켜 혼후한 인격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겸암 류운용 관찰사 임압 류중영의 맏아들로 16세때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영달에 뜻이 없어 자아확충에 정진하였고 34세때 벼슬에 나가 풍저창직장,

내자시주부,진보현감,인동현감,풍기군수,원주목사,한성부판윤등을 역임했고

인동현감때 백성들을 억압.착취하는 토호들의 비리를 바로잡았고 고려가 망하고

절조를 지킨 야은 길재의 금오서원과 지주중류비를 세워 학문을 숭상하고 의리를

존중하는 기풍을 세우고자 하였다.

대산이상정(1711~1781)은 기문에서'안으로 부유하면서도 밖으로 검소해 보이는것은

 모두 겸양에 그뜻이 있는것이며 호사스럽고 부유스럽지않고 산계곡에 가리어 보일듯

말듯,있는듯 없는듯 겸양의 미덕이며 인과 지를 체득하여 풍영(風詠)의 취향을 가지지

 않는것이 없고 천지영허(天地盈虛)의 도와 산천손익의 도리를 진실로 묵연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감상하는 순간에 영회하며 깨달았고 흥이 극도에 이르면 돌아왔다'하며

 겸암의 겸양의 뜻을 극찬하였다.

 

우리는 겸암정을 들른후 부용대에서 하회마을을 구경한후 화천서원으로 향했다.

우산을 쓰고 걷는 걸음이었지만 모두의 걸음걸이는 가벼워 보였다.

 

세상사 한마디

사람의 마음은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고 싶어 한다.

미워하고 걱정스럽고 불안하고 슬프고

바다처럼 넓었다가 바늘귀처럼 좁아졌다가 변덕이 심하다.

걱정이 찾아오면 그것에 발을 담그지 말고 고삐를 휘어잡고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마음 그런 여유가 필요하다

 마음의 변덕에 끌리지 말고 잘 운전하여

행복과 웃음이 가득한 날이 되시길''''

 

 

 

 

 

 

 

 

'허수료'는 기숙사로 주역의 택산함괘 山上有澤 咸 君子以 虛 受人에서 취했다.

산은 물을 막아 못을 이루고 못은 산으로 인해 커진 커진 빈 공간에 물을 받아드려 만물을 기르고 윤택하게 하는것이다

군자가 이를 본받아 사사로운 마음을비우고 더불어 함께하는 마음으로 백성을 포용하는 것이다라는 의미가 있다.

 

 

'암수재'는 북쪽방으로 자신의 어리석고 국량이 자고 물정에 어둡고 생각이 꽉막히고  정신이 미약하다는것을

수양을 통해 밝혀나간다는 겸양의 의미가 있다.

''강습재'는 남쪽방으로 주역의 상사 麗이澤 兌 君子以 朋友講習에서 취하였다

두 못이 붙어있으면서 서로 소통하여 물의 높이가 같아지는것과 같이 군자가 이를 본받아 동료가

 서로 공부하고 토론하여수준을 높이고 이를 반복하여 몸으로 체득하는것이다'라는 뜻이다

 

 

 

풍산시장 '황가네감자탕'에서 아침을 맛있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