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는 내동기들

안동 풍산 우렁골의 예안이씨 상리종택 - 오토산.

아까돈보 2015. 9. 8. 20:36

 

 

 

사진이 잘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8517

 

풍산 우렁골의 예안이씨 상리종택

 

도산사원 거경대학에서 9월 6일 풍산.풍천지역 체험연수를 가졌다.

08:00 출발하는 버스에는 영주.봉화.예천에서 참석하시는 분도 있었고 이번달에

새로 참석하시는분도 6명이나 되어 버스는 만원을 이루고 승용차 한대와 함께 했다.

풍산시장에서 아침을 마치고 예안이씨 상리종택 탐방으로 연수가 시작되었다.

 

전의.에안이씨가 600여년 함께 살고있는 우렁골(芋洞)은 풍산읍 동쪽 下枝山아래

풍산들을 바라보며 서향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하지산.와우산.옥녀봉.비아산으로

마을을 감싸고 마을앞 상리천이 남으로 낙동강에 흘러든다.

뒷산과 집들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하늘의 옥녀가 내려와서 베틀에 앉아

날줄과 씨줄을 고르며 베를 짜는 형상과 같다고 한다.

 

예안이씨는 전의이씨 7세손 이천의 아들 삼형제중 둘째 文莊公 李混의 손자

이익(李翊)이 보문각제학으로 예안군(禮安君)으로 봉해져 관향을 예안으로 쓰며

 예안이씨의 시조가 되었고 이익의 손자로 전라판서를 지낸 이송의 아들 이천과

 이온형제의 후손들이 서로 다른시기에 각각 도산과 풍산에 입향하였다.

불곡 이천은 세종조에 판중추부사, 아우 이온은 이조판서를 지냈으며

이온의 증손 李英이 1519년 기묘사화에 신진사류들이 화를 당하는것을 보고

동생 이전과 이훈을 데리고 현재의 풍산 상.하리로 낙향하여 입향조가 된다.

이후 동족마을을 이루고 忠孝와 仁敬을 가문의 유훈으로 삼아 문인 달사를

배출하여 영남의 명문가로 자리를 굳혔다. 

 

예안이씨 상리종택은 시조 예안군 이익의 6대손 이훈(李薰 1489~1552)은 생원시에

 급제해 서울에 살았으나 형인 영(英),전(筌)과 함께 1519(중종14) 기묘사화의 참혹한

현실을 보고 벼슬길에 나아갈 뜻을 버리고 낙향했고 그의 손자 이진(1555~1628)은

서애 문인으로 임란에 종군하였고 이진의 손자 고산 이유장(1625~1701)은 학문과 

인품이 높은 선비로 천거되어 공조좌랑.안음현감에 제수됐으나 나가지 않았다.

 

상리종택은 이훈의 종택이자 시은당 이진의 고택이며 고산 이유장의 큰집으로

1525년 세워졌고 이훈의 주손이자  이유량의 5대손인 우원 이정국(李禎國 1743~

1807)은 1773년(영조49)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1789년(정조13) 동몽교관에 제수

되었으나 나가지 않았고 학식과 경륜을 겸비한 선비로 사림의 존경을 받아

불천위로 모시고 이향직씨가 종가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종택 옆에는 고산 이유장 선생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었다.

 

상리종택은 600여년이 지나오면서 주변의 땅들이 높아지고 도로도 높아져서

주변에서 가장 낮은 지역으로 되어 있어서 조금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으나

비교적 관리는 잘 되고 있는것 같았으며 우리는 건물주변을 돌아보고

충효당으로 향했다.

 

세상사 한마디

모르는사람을 이용하지 말고 아는사람에게 아부하지 말고

공적인 일에서 나를 생각하지 말고

 사적인 일에는 감투를 생각하지 말며

나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타인을 사랑하고

나를 다독거리는 마음으로 남을 다독거리는 삶을 사시길...

 

 

 

 

 

 

 

 

풍산시장 황가네 식당의 아침ㅇ맛은 역시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