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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일마을 안동권씨 병곡종택
소산마을 탐방을 마친 우리는 가일마을 탐방을 하기로 하였다.
가일마을은 안동권씨 14개파중 복야파의 한갈레가 500년을 세거해온 전통마을로 학가산 줄기인 정산(井山) 두 봉우리가 나란히 동서로 맞서 동쪽봉우리(소정산)의 줄기가 마을의 좌청룡이 되고 서쪽 봉우리(대정산) 줄기가 내려와 우백호가 되어 마을을 포근히 감싸고 있으며 뒷편에는 정산의 암벽이 병풍처럼 둘렀고 앞에는 낙동강이 동서로 흘러 山水의 利를 골고루 갖춘 마을이다. 고려때 왕씨에 이어 류씨가 살았고 조선 세종때 정랑을 지낸 권항(1403~1461)이 이 마을의 부호였던 장인 류서로 부터 임야와 전답을 물려받아 이곳에 정착하고 그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문한(文翰)과 과한(科翰)의 연면(蓮綿)하였으나 영달을 탐하지 않고 가풍과 인격도야에 힘써오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가일종택은 입향조 정랑 권항에 이어 손자 화산 권주(1457~1505), 아들 사락정 권질(1483~1535)로 이어졌으나 온가족이 참혹한 화를 당하여 화산의 넷째아들 권굉(1494~?)이 가통을 계승하여 화산의 7대손 병곡 권구(1672~11749)가 학행으로 불천위로 모셔지면서 병곡종택이라고 한다. 時習齋는 병곡이 학덕과 성망이 높아지자 선비들이 배우고자 원근에서 다투어 찾아오므로 서실을 만들어 시습재라 하여 종택의 재호를 시습재라고도 한다. 종택은 17세기 후반에 지어졌고 19세기 중엽에 중건된것으로 판단되며 큰사랑,대청(환와서당:丸窩書堂),자은사랑(時習齋),안채,사당,뒷간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청을 근년에 중건하였다.
"절의를 지켜온 松柏의 푸름"은 7대동안 금부도사가 세번찾아온 영남의 유일한 가일 안동권문의 의리정신을 잘드러낸 수식어 이고 갑자사화에 휘말려 목슴을 잃은 화산 권주와 신사무옥에 참화를 당한 권전 그리고 이인좌의 난으로 고초를 격은 병곡 권구가 있다.
권주는 연산군이 즉위하여 난정을 행하자 직언을 서슴치 않았으며 페비윤씨 복위를 반대하다가 평해로 유배되어 죽임을 당했고 그의 차남 권전은 성균관에 수학할 당시 소수가 되어 정몽주와 김굉필의 문묘종사를 청하는 소를 올렸으나 부결되자 세번에 걸쳐 허락을 받아낼 정도로 굴함이 없었으며 이후 기묘사화에 연좌되어파직을 당했고 1621년 신사무옥에 목슴을 잃었다. 안동권문은 양대에 걸쳐 참화로 벼슬을 멀리하고 음직으로 가세를 이어가다가 구봉 권박에 이르러 관직에 나갔으나 그 역시 성품이 강직하여 세도를 믿고 횡포 하는자들을 멀리했던 탓에 수차레 귀양을 갔으며 병곡 권구는 관직에 나가지 않았지만 불의에 항거하는 선비용모를 갖춘 인물로 당파 분열된 현실을 개탄해 학문에만 뜻을 두었고 분열과 대립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것에 대한 스스로 경계하였으나 이인좌의 난에 연루되어 영조에게 친국을 받을때 당당함으로 맞섰던 것에서도 잘 드러났다.
폭정이 난무하는 시대적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강직함으로 맞서면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올곶음이야 말로 송백의 푸름과 같이 수백년 동안 이어 내려온 가일 권문의 절의정신이라 한다.
병곡종택에서는 종손님으로 부터 가문의 내력에 관하여 상세한 설명을 들은 후 우리는 수곡고택으로 이동을 하였다. 상세한 설명을 하여주신 종손님께 감사를 드린다.
세상사 한마디 혼자 마시는 커피는 진해서 좋고 둘이 마시는 커피는 따뜻해서 좋고 여럿이 마시는 커피는 화기애애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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