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는 내동기들

안동시 풍천면 가일마을 남천고택 - 오토산.

아까돈보 2015. 9. 21. 17:40

 

 

 

사진이 잘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8553

 

 

가일마을 마지막체험지 남천고택(南川古宅)

 

 

수곡고택을 나온 우리는 야유당을 잠깐 들른후 남천고택을 들른후 가곡지입구에서

권오설선생 유적비를 보고 신도청을 들른후 오늘의 체험을 마쳤다.

 

남천고택은 가곡리 동쪽에 위치하고 대지 200여평에 토담이 길게 둘러 쳐져있고

고택내에 연못이 있어 풍치가 아름다우며 남천 권숙의 고택으로  아버지  야유당

권장이 1850년(철종1)에 지어준 집이고 남천 권숙은 용모가 응중하며 어른을 공경

하고 종조부 환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형제간 사마온 같은 우애가 깊고 친족

에게 화목하며 항상 서책으로 즐기며 지내다가 병으로 고종하니 70세였다.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권오설(1897~1930)은 일제강점기 유명한 사회주의자로

병곡 권구의 세아들중 세째 권집의 7대손으로 1916년 경주의 대지주 최준의

도움으로 대구고등보통학교에입학했고 조선역사연구회 활동을 하다가

1918년 친일교사 배척,동화적 노예교육 반대를 주자하여 퇴학 당하였고

1919년 전남도청 근무중 3.1운동이 일어나자 광주에서 시위주도하였고

검거를 피해 낙향해 풍서면 원흥학술강습소, 일직면 소호강습소등을 설립

교사로 활동했고 1923년 풍산학습강습소,풍산청년회를 조직 11월 이준태.

김남수등과 함께 풍산 소작인회를 조직, 1925년 꼬르뷔 국내부에 가입하여

1925.4.17.조선공산당 창당, 1926년 6.10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되어

1928년 5년형을 받아 복역하다 1930.4.17일 고문후유증으로 옥사했다.

해방후 대한민국이 건국되서 사회주의 민족운동가의 활동은 역사속에서

지워졌다가 수년전 그 활동이 재조명되었다.

 

권오설 선생의 시신을 수습했던 권대인 국장님은 철관속의 참혹한 모습

설명을 끝으로 남천고택 체험을 마치고 마을을 나서며 가곡지입구에 서있는

권오설 유적비와 보호수에 그려진 아름다운 그림을 구경한후 신도청의

 모습을 구경하고 안동으로 돌아왔다.

 오늘 오백년 전통마을 네동네를 구경하면서 2천년의 과거를 돌아보는 

 즐거운 시간을 가지게 되었으며 상세한 설명을 곁들인 이동수 박사님과

거경대학 관게자님들과 함게하여주신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세상사 한마디

인생의 첫번째 선물은 삶이요두번째 선물은 서로 사랑함이요

세번째 선물은 서로 이해 함이다  본질을 믿고 살아가야지

보이는것만 가치를 두고 살아가면 실망스럽지 않은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