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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종택 방문과 퇴계시공원 탐방
우리는 거경대학 입교식과 경전독송이 끝나고 퇴계종택방문과 퇴계시공원등
주변유적을 탐방하는 시간을 가졌다.
'퇴계기념공원'은 퇴게선생 탄신 500주년을 맞아 2002년 퇴계종택옆 6,729평에
조성되었고 선생이 남기신 2,300여수의 시중에서 13수를 와룡출신 황재국 교수의
글씨로 자연석에 새기어 전시하고 있으며 김병일 이사장님은 거경정과
주변의 시비를 돌면서 각각의 시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하시었다.
'溪上書堂'은 겸재 정선이 그린 1000원권 지폐 뒷면 '계상정거도'의 배경이며
1550년 벼슬에 물러나 이곳에 집을 짓고 시를 읊었고 1558년 율곡이 이곳을 찾아
3일간 유숙하며 도학을 전수하던곳이며 학봉,겸암,월천과 오천의 일곱 제자도
이곳에 입문하였고 도산서당을 짓기 이전까지 靜坐修鍊과 講道傳授의 수도처로,
도산서당을 세운 후도 이곳에 연거하였으며 1570년 계상한서암에서 서세하셨고
1997년 권오봉 교수의 고증으로 탄신 500주년을 맞아 멸실된유적을 복원하여
중건비를 세웠으며 우리는 이곳에서 김병일 이사장님으로부터 계상학림과
건너편 寒棲庵古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을수 있었다.
계상서당 주변에는 嘆琴石, 臨省臺, 古藤巖, 金剛臺, 花巖臺등도 있다고 한다.
.퇴계선생종택'은 동방유학의 종장인 퇴계 이황(1501~1570)선생의 불천위 사당을
모신 종택으로 口字形종택건물과 솟을대문 두개, 秋月寒水亭과 사당이 있다.
퇴계선생은 芝山북쪽에 살다 1546년 東巖곁 養眞庵, 下溪 霞峯곁, 竹洞등에 살다가
1550년 溪上 서쪽에 정착하여 한서암을 짓고 생활하다 다시 동쪽에 옮겨살았으나
선생 사후 화제로 건물이 소실되고 주변토지로 되어있어 종택은 부포에서 살았다.
1714년 창설재 권두경이 도산서원 원장이 되어 종택과 정자를 새로 지었으며
조선조 도학의 연원은 퇴계선생으로 부터 비록되었다는 의미로 '道學淵源坊'
고봉 기대승의 시에서 惟千載心 秋月照寒水를 인용하여 '추월한수정'을 당호로,
玩佩堂(완패당)과 理韻齋(이운재)라 하였고 山南闕里, 海東考亭의 편액도 있었다.
현 종택은 1907년 한말 의병활동시 왜병에 의해 소실되었다가 1926년 13대손인
忠鎬가 새로 건립하였으며 우리는 추월한수정에서16대손 根必씨를 만날수 있었다.
귀가 들리지 않는 86세의 고령으로 기념촬영을 하시고 안동시 외곽의 陶信門과
경북도청 安民館의 현판을 쓰신 글씨로 '義在正義'란 친필글씨를 나누어 주시고
자녀교육 교재로 '인성교육의 가치'와 자기 수양 도서로 "불광불구'를 소개하시며
정신문화의 수도 시민으로 열심히 살아달라는 부탁을 하시고 대문까지 나와서
배웅하시는 종손님의 강녕을 기원하며 우리는 도산서원으로 갔다.
세상사 한마디
퇴계선생시 春日溪上(봄날 계상에서)
雪消氷泮녹生溪 눈녹고 얼음 풀리니 맑은빛 시내에 생겨나고
淡淡和風颺柳堤 살랑살랑 봅바람 버드나무 제방에 가득부네
病起來看幽興足 병 털고 일어나 와보니 그윽한 흥취 흡족한데
更憐芳草欲抽第 더욱 어여쁘기는 꽃다운풀 새로 돋아나려는 것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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