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신애라와 결연
우간다 대학생 4명 '학사모'
"폐허서 우뚝 선 한국처럼 우리도 기적 만들어갈 것"
23일 오전, 우간다 수도 캄팔라 교외의 한적한 전시회장.
갓 대학을 졸업한 우간다 젊은이 94명이
파란 학사 가운을 입고 모였다.
다국적 구호단체 컴패션(www.compassion.com ) 관계자들이
자신들의 후원으로
학업을 마친 우간다 젊은이들을 축하해주는 자리였다.
컴패션은 미국인 에버렛 스완슨(Swanson) 목사가
1952년 한국의 전쟁고아를 돕기 위해 설립한 단체다.
지금은 한국·미국·호주 등 전 세계 11개국 후원자들이
가난한 나라 25개국 어린이 110여만명과
1대1 결연을 맺고 돌보는 세계적인 단체가 됐다.
첫 수혜국이었던 한국은 1993년 구호대상에서 '졸업'했고,
2003년부터는 후원국으로 탈바꿈했다.
이날 축하연에서 데이비드 달린(Dahlin·54) 컴패션 부대표가
"한국이 전쟁의 폐허에서 우뚝 일어났듯이
우간다도 기적을 이룰 수 있다"며
"여러분들이 그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했다.
참석자들 사이에서 환호와 박수가 터졌다.
우간다기독교대학(UCU)을 졸업한 이사야 마시가(26)씨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이날 행사에 참석하기에 앞서,
21일 수도 캄팔라에서 130㎞ 떨어진 고향마을
부두마시도도에 다녀왔다.
이사야씨와 한국컴패션 관계자들을 태운 승합차가 마을에 들어서자,
동네 꼬마 20여명이 맨발로 우르르 몰려왔다.
이사야씨가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차에서 내렸다.
그는 씩 웃으며 수풀 너머 흙집 1채를 가리켰다.
"저기가 우리 집이에요."
이사야씨는 부두마시도도 마을의 '희망'이자 '기적'이다.
인구 4600여명이 사는 이 시골 마을에서
지금까지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은 이사야씨를 포함해 딱 2명이다.
동네 꼬마들은 10명 중 4명꼴로 하루 한 끼밖에 못 먹는다.
멀건 옥수수 죽이 주식(主食)이다.
우간다 인구의 35%가 이 같은 절대빈곤 속에서 살아간다.
- ▲ 23일 우간다 캄팔라시 교외에서 컴패션 LDP 장학생과 컴패션 관계자들이 졸업장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왼쪽부터 이사야 마시가씨, 몰리 이란쿤다씨, 존 카붕가씨, 스펜서 은디오무기엔이씨(이상 졸업생), 실바누스 투리야무위주카 우간다 컴패션 대표, 데이비드 달린 국제 컴패션 부대표./김동현 기자
사탕수수를 입이 닳도록 빨고 있는 꼬마들을 보며 이사야씨는
"나도 저 애들과 다를 게 없었다"고 했다.
12남매 중 장남인 이사야씨는 만 8세가 넘도록 학교에 가지 못했다.
"배고픈데 무슨 학교냐"며 부모가 반대했다.
그를 살린 것은 컴패션이었다.
"학교에 다니고 싶어 학교 주변을 어슬렁거릴 때가 많았어요.
어느 날 컴패션 관계자들이 와서 친구들 증명사진을 찍고 있더군요.
그 단체에 등록되면 고기도 주고, 옷도 준댔어요.
나도 등록시켜달라고 졸랐죠.
그 뒤로 학교도 다닐 수 있었어요. 굶지도 않게 됐고요."
이사야씨는 무섭게 공부했다.
부두마시도도 마을은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다.
해가 지면 이사야씨는 흙집에서 기름 램프를 켜고 공부했다.
1995년 집안 형편이 기울어 온 식구가 살던 집에서 내쫓겼다.
이사야씨는 고기잡이로 생계를 도우면서도 전교 석차 10등 안을 유지했다.
고등학교를 마친 이사야씨는 대학에 가고 싶었다.
학비가 문제였다.
우간다의 대학 진학률은 100명 중 1명꼴이다.
어렵사리 대학에 간 학생도
10명 중 3명은 학비를 못내 1년 만에 자퇴한다.
이사야씨의 꿈을 이뤄준 건 '한국 엄마'였다.
평소 아프리카 교육문제 해결에 관심이 많던
문애란(56·웰콤 기획위원)씨가 한국컴패션을 통해
이사야씨의 후원자로 나선 것이다.
이사야씨는 2006년부터 3년간
문애란씨가 매달 보내주는 돈 30만원으로 우간다기독교대학을 다녔다.
그는 좋은 소식이 있거나, 고민이 있을 때마다 문씨에게 편지를 썼다.
공부를 마친 뒤 다른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문씨는 "자기 형편도 어려운 청년이
남을 생각하는 걸 보고 참 많은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문씨는
이사야씨 외에도 존 카붕가(24)·몰리 이란쿤다(25)씨 등 2명을 더 후원했다.
스펜서 은디오무기엔이(25)씨는
탤런트 신애라(40)씨로부터 학비·생활비를 받았다.
'한국 엄마' 문씨와 신씨의 후원을 받은 네 젊은이는
단 한 번도 수업을 빼먹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 올여름 대학을 마쳤다.
한국컴패션 후원자가 배출한 해외대학 졸업생 '제1호'가 된 것이다.
어려움을 뚫고 졸업에 성공했지만,
이들의 앞날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간다의 대졸자 취업률은 20%를 밑돈다.
다행히 이사야씨는 컴패션 현지 조직의 교육 담당자가 됐지만,
나머지 3명은 아직 미래가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이들의 각오는 남달랐다.
"한국을 비롯한 후원국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흙집에서 죽으로 연명하며 미래 없이 살았을지 몰라요.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기적입니다.
하지만 이곳 우간다에서 앞으로 더 큰 기적을 만들어 나갈 겁니다.
어머니의 나라가 그랬듯이 말이에요."
사랑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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