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자료집

안동 전통고택.

아까돈보 2011. 4. 5. 23:57

 

 

 

 

 오늘날의 관광형테가 기존의 보는 관광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고 경험하는 형태로 변화되어 가는 추세에 맞추어, 우리 지역 곳곳에 산재한 전통고가옥을 한옥체험 관광 상품으로 개발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의 전통이 고이고이 보존되어 살아있는 한옥에서 하룻밤을 지낸다면 한옥의 멋을 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인 안동에는 어떤 전통 한옥체험관광지가 있는지 살펴봅시다.

 

전통적인 기품 그리고 서정적 선율을 간직한 곳 "임청각"

http://www.imcheonggak.com/

안동에서 안동댐으로 들어가는 길. 중앙선 철로에 가로막혀 있는 커다란 한옥이 보인다. 기왓장 위에는 철가루가 빨갛게 묻어있고 집 앞은 댐이 건설되어 있다.

 

우리의 역사 가운데 암울한 시기인 일제시대의 슬픔을 가득 안고 있는곳이 바로 "고성이씨" 종택인 임청각이다. 이곳은 엄청난 재산을 모두 팔고 위폐를 땅에 묻은 후 가족을 모두 이끌고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난 석주 이상룡 선생의 태실이 있다.

 

조상에게 맹세코 나라를 되찾겠다는 각오로 떠난 고국, 그러나 석주 이상룡 선생은 대한민국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1932년 한 많은 인생을 마감하고 한참이 지난 1990년 유해만 쓸쓸히 안동으로 돌아왔다.

우리의 슬픈 역사를 온몸으로 안고 있는 "고성 이씨" 종택이 얼마전 부터 전통가옥체험장으로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마치 시간을 달리 한 듯  예쁜 한옥 집이 옹기종기 "오천군마을"

오천군자리에 세거한 광산 김씨는  신라 49대 현강왕의 셋째아들인 김흥광을 시조로 모시며 .진성 이씨 봉화 금씨 안동 권씨 등 영남 사족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그 일파가 안동으로 옮게와 자리 잡았다.

 

본래 안동 예안면 오천리에 광산 김씨의 예안파 동성마을이 있었으나 안동댐을 건설할 당시인 1974년에 이곳으로 터를 잡으며 오천군자마을 이루었다.

 

군자리를 지키던 집들이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이건 전의 위얀함을 읾어버렸지만 집 한 채 한 채가 의젓하여 옛 조선집의 멋과 격식을 잘 보여준다.

 

또한 21대 600년에 걸쳐 전해진 고문서 4,000여 점이 보관되어 박물관이라 할 정도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종택 입구에 있는 유물전시관인 승원각에는 이 가문 출신들이 남긴 고서와 문집류 교지 호적 토지문서 등이 전시되어 고택을 체험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http://www.gunjari.net

새소리, 물소리,그리고 자연의 소리 "농암종택"

 

 

http://www.nongam.com

농암종택은 안동의 북쪽 끝 도산면 가송리에 있다. 안동에서 35번 국도를 이용 도산면 소재지를 지나 봉화와 경계선에 이르면 고산정 이정포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 진입하면 저절로 아 ~라는 감탄사가 흘러 나올만한 경치가 눈앞에 펼쳐진다. 깍아지른 듯한 절벽과 에메랄드 빛 강물이 어우러져 신비감을 자아내는 곳이 가송리이다. 가송리에서 종택 이정표를 따라 한 굽이 산모퉁이를 돌아서면 농암종택을 만날 수 있다.

  

가송리의 협곡과 은빛 모래강변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이른바 "도산구곡"의 비경이 고스란히 간직된 곳에 위치한 농암종택은 6,610 제곱미터의 대지위에 사당,안채인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의 한적한 곳에 자리 잡아 종택의 경관은 한 폭의 동양화같은 정취를 느껴 볼 수 있을 만큼 빼어나다.,

  

현대의 유흥문화와는 동떨어진 이곳에서 차 한 잔 즐기면서 옛 정취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

 

 

중요 민속자료.학암고택

안동 학암고택 중요민속자료179호 

소 재 지; 경북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248

조선 중종시(中宗時) 이조참판(吏曹參判)을 거쳐 삼도방백(三道方伯)을 지낸 청백리(淸白吏) 허백당(虛白堂)의 12대손인 학암(鶴庵) 김중휴(金重休)(1797∼1863)가 분가할때에 건립한 주택이다. 후일 학암이 조산대부(朝散大夫) 제능참봉(齊陵參奉)을 지냈기 때문에 본 가옥을 참봉댁(參奉宅)이라 부르게 되었다. ㅁ자형 집이며 중문을 기준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나뉘어 있는 독특한 건물이다. 원래는 중문 밖에 사랑채, 행랑채, 초당이 있었으나 현재는 그 자리만 남아있다. 동네 어귀를 돌아들면 약간 경사진 곳에 토담을 두르고 행랑채에 솟을대문이 있다. 넓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안채가 있고 그 오른쪽에 곳간채가 있으며, 마당의 동쪽에 사랑채가 있다. 안마당으로 통하는 중문간의 왼쪽에는 사랑방이 있고 오른쪽에는 마구간과 부엌방이 있다. 안채는 안마당과 폭이 같은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건넌방, 오른쪽에 안방이 있고 안채의 오른쪽에는 곳간채 4칸을 나란히 놓았다. 사랑채는 전면 툇마루 뒤에 온돌방과 개방된 마루 1칸이 ㄱ자형을 이루고 있다. 행랑채는 원래 5칸인데 대문간 오른쪽 2칸은 주춧돌만 남아있고, 왼쪽 2칸은 온돌방으로 되어있다.

※명칭변경 오미동 참봉댁 → 안동 학암고택 2009년12월14일

 


안채 중요민속자료179-1호 

소 재 지; 경북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248

오미동 참봉댁(參奉宅)의 안채는 안마당과 같은 폭 3칸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건넌방, 오른쪽에 안방을 배치하였다. 안대청의 뒷벽 각 칸에는 양여닫이 널문을 달았는데 가운데 칸은 문턱을 낮추어서 뒤꼍 출입을 편하게 하였다.

 


곳간채 중요민속자료179-2호 

소 재 지; 경북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248

오미동 참봉댁(參奉宅)의 곳간채는 4칸으로, 안채 오른쪽에 널판벽을 치고 병렬로 배치되어 있다.

 

문간채 중요민속자료179-3호 

소 재 지; 경북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248

오미동 참봉댁(參奉宅)의 문간채는 원래 5칸이었으나 대문 오른쪽 2칸은 무너져 없어지고 주춧돌만 남아 있다. 왼쪽 2칸은 온돌방으로 꾸몄으며, 대문은 솟을대문이다.

 


방아간채 중요민속자료179-4호 

소 재 지; 경북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248

 

 측간 중요민속자료179-5호 

소 재 지; 경북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248

 

별당 중요민속자료179-6호 

소 재 지; 경북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