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마지막 날,
우리집 바깥 정원에는
호반에 비친 은행의 단풍도 절경이지만
이곳저곳에 가슴 저린 가을 사연을 노래로 읊고
제대로 시로 읽어내려가느라 얼굴은 지지붉어지고,
멀지않아 보여줄 하이얀 설경을 도배하려고
모든 산하를 깨끗이 지우기전에
마지막 안깐힘을 절정으로 보여주는
가을 만추를 화려한 색채로 그린 그림을 확 펼쳐놓고 있다.
그림은 그리도 화려한데
삼삼오오 손잡고 걷는 사람들의 마음은 시린것 같고
벤치에 앉아 조곤조곤 얘기 나누는 사람들의 속삭임도
서걱이는 갈대가 서로 몸을 부벼대며 내는 소리를 닮아
가을바람이 휑하니 드나든다.
이제 멀지않아
이곳 진모래, 득심골에도
찬바람 불고 눈꽃이 피고
얼음이 켜켜이 골을 메우리라.
무서리 내리고
마당에 더욱더 빛깔고운 국화가
노오란 꽃을 꽃피우는데
집사람 얘기로는
뿌리에 닿은 뒷산 검은, 썩은 퇴비를 먹은
가운데 꽃무더기가 제일로 빛난다 한다.
얼마전 친구가 핀잔삼아 얘기하기는
너네집 풍광이 사진으로보니 환상적이지
직접가서보면 그만 못하지? 했지만
그는 애꿋은 우리집만 그림으로 보느라
마당에 핀 꽃은 제대로 보지 못하고
더더구나 바깥정원의 . . . 은 보지 못해서
우리는 언제나 바깥에서 휘익~ 일람하고 말지
이 계곡에 들어앉아, 이 산골짜기에 주저앉아
그리고 저 쪽빛으로 푸르른 호반에 몸 풍덩담가 보지 못하고
그저 구경꾼으로만 우리집 만 살피고 그만이다.
그래서 다 눈으로라도 살펴주지 못해
토라지고 속아지 옹알거리는
저 속 붉은 산수유 고운 얼굴에도
설음으로 눈물머금고 있는 들국화 하나하나에도
그리고 서걱이는 슬픈 갈대 에도
정을 쏟아주고, 숨결도 내불어 간지러주고 싶다.
이럴때 한번쯤 낭송하라고
육사 이원록의 시 < 광야 >를
내 작은 연못가에 세워두었는지 모른다.
이 그림을 곁드려 보는 이들도
나와 함께 이들의 슬픈 서걱임을 들어주기 바란다.
그리고 제몸 비워내고 내년봄에 꽃피울
그들의 꿈도 함께 읽어주기 바란다.
나는 진모래 득심골에 살면서
이 자연의 속삭임 듣는 재미로
오늘도 이 산길을 서성인다.
혼자 걸으면 더 잘들리고
함께 걸으면 서로 달리 들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