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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도 우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문 (28).

아까돈보 2012. 11. 20. 22:47

 

 

 

 

 

하늘도 우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문 (28)

 

 

 

 

제2차 세계대전중 독일의 최대 강제 수용소인 

'쉰들러 리스트'와 '안네의 일기'의 무대가 되었던

이 수용소는 소련군이 진입하자 독일군이 퇴각하면서

미처 파괴하지 못한 원형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단지 유대인 만을 학살한 곳이

아니라 정치범, 정신병자, 장애인, 동성애자 등

사회악이라고 생각되는 수많은 유럽사람을 이곳으로

대려와서 일정기간 지나면 가스실에 넣어 처형했다.

 

이 수용소에선 100만 - 400만명의 유대인과 유럽

사람들은 처형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어서 이곳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치의 잔인한 인상을

남겨주고 있다.

 

이곳 제1수용소에는 2만여평의 면적에 크고작은

수용소가 30여개 있으나 여기서 3km 떨어진

브졘진카 제2수용소는 면적이 53만여평에

수용소만 300여개소 있었다는 것이다.

이곳에선 한꺼번에 16,000명을 처형할 수 있는

가스실이 있는등 인간 학살공장이며 인간창고이다.

특히 나이가 많은 70 - 80세의 노인들은 쓸모가

없어서 대부분 가스 질식사 시켰단다.

 

독일이 패망할 당시 제1수용소의 수용자를 미처

처형하지 못한체 도망가는 바람에 7,500여명의

수용자가 기적적으로 살아 남아 병원으로

후송되기도 했단다.

 

이런 만행을 알고있는 독일의 후손들은 유럽인들에게

백배사죄와 더불어 보상을 해 주고 있지만 일본은

우리나라를 비롯, 동남 아시아에서 저지른 만행에

사죄는 물론 이에따른 원만한 보상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을 36년 동안 고문, 학살,

처형 등 온갖 만행을 자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깊은 사죄와 반성을 하지 않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다.

 

 

일본인들도 이곳에 와서 자기 선조들이 저지른

만행과 비교를 해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팀이 이 수용소를 둘러보는 가운데 어느나라

고등학교 학생인지는 모르나 단체로 비극의 현장과

 산교육장을 보고 있어서 우리나라에도 일본의 만행을

전 세계인에 알릴수 있는 대형 전시관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수용소 복도엔 수용자들의 증명사진이 걸려있다.

 

수용자들의 몸엔 문신으로 숫자를 세겨 넣었다.

 

 수용자들을 분류하는 표시 방법.

 

수용소 복도에 걸려있는 수용자들의 사진.

그나마 사진 촬영도 밀려드는 수용자들 때문에 수용 초기에만 찍었단다. 

 

 제대로 먹지못해 앙상한 뼈만 남은 수용자들.

 

수용자들이 앙상한 뼈만 남았다. 

 

한끼의 식사가 고작 이것이다. 

 

 

 

 수용자들이 입었던 옷.

 

 복도의 사진을 보고있는 우리 일행들.

 

수용자들 사진. 

 

 가이드 심선생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는 우리팀.

 


 

 유태인의 씨를 말리려고 어린이의 성기까지 절단 했단다.

 

 

 

 

가이드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일행들.

 

 집단 공중 화장실.

 

기마병의 마굿간. 

 

마굿간을 개조, 3단으로 만들어 수용자를 기거 시켰다. 

 

 다른 건물의 전시장으로 가고 있는 일행들.

 

당시 건물주위엔 전기 철조망이 가설되어 있다. 

 

지금도 수용소는 음산한 기분이 든다. 

 

전기 철조망. 

 

화장터.

 

 

천정엔 아직도 검은 끄름의 흔적이 남아있다

 

 아궁이.

 

화장터 내부 전체가 검은색으로 변해있다.

 

 

 

 

 

화장장의 굴뚝.

 

수용소를 둘러본후 마음이 무겁고 착잡한 심정으로 수용소를 나오고 있는 일행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