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는 내동기들

안동, 농암선생 유적단지 탐방 - 오토산.

아까돈보 2015. 6. 11. 20:18

 

 

 

사진이 잘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8235

 

가송리에 자리잡은 농암선생유적단지

용수사를 떠난 일행은 농암종택.분강서원.긍구당.애일당.강각.명농당.신도비등이

이건되어 있는 가송리의 농암선생 유적단지를 찾았다.

 

농암종택(聾巖宗宅)은 원래 안동댐으로 수몰된 분강촌 '부네'마을에 있었다.

영지산 자락 취병산이 마을뒤로  병풍처럼 둘려져 있고 마을앞에 낙동강이 유유히

흘러 수려한 자연과 넓은 들판으로 사람살기 좋은곳이었는데 고려말 군기서 소윤

李軒이 어지러운 세상을 염려  벼슬을 버리고 영천을  떠나 부네마을에 자리잡았다.

안동댐 건설로 흩어졌던 유적들을 2004년 안동댐 상류 가송리에 유적단지를 조성

옛 유적을 한자리에 옮기고 없어진 유적을 새로이 복원해 부네마을을 연상케했다.

 

농암 이현보(1467~1555)는 입향조의 현손으로 조선중기 문신이자 청백리로

자는 비중 시호는 효절로 1498년(연산군4) 식년문과급제 영천군수.밀양.안동부사.

충주.성주목사를 지냈고 병조참지.동부승지.부제학.경상관찰사.호조참판을 거쳐

43년 상호군이 되고 자헌대부에 올랐고 54년 지중추부사되었으며 75세때에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와 분천강가에 배를 띄워 뱃놀이를 하면서 시를

 지으시며 강호의 즐거운 마음을 누리다가 삶을 마쳤다.

 

긍구당(肯構堂)은 종택의 별당건물로 영천이씨 예안파 파조인 소윤 이헌이

지은 집으로 분천리에 있다가 댐건설로 1975년 운곡리로 옮겼다가 이곳으로

이건했으며 긍구당은 書經에 나오는 구절 '궐자내불긍당 신긍구(闕子乃弗肯堂

신肯構)를 인용하여 '조상들이 이루어 놓은 훌륭한 업적을 소홀히하지말고 길이

이어 받아 성취시키라'는 뜻이 있으며 현판은 시서화의 삼절로 일컬었던

靈川子 申潛(1491~1554)의 전서체 글씨다

 

분강서원(汾江書院)은 1613년(광해군5)에 사림들의 공의로 농암선생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향현사에 위판을 봉안한뒤 1700년(숫종25) 애일당 남쪽에

서원을 짓고 1702년 10월에 위판을 봉안하고 遺像을 묘내에 봉안하였다.

고종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패되었다가 1967년 옛터 서쪽 복원하였고 댐건설로

운곡리로 이건하였다가 2007년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분강서원 흥교당에 둘러앉아 경전독송 후 태극도설과 천부경의 해설을 들으며

 선인들의 생활을 체험하는 기회를 가진 우리들은 농암 유적단지를 구경하였다.

 

세상사 한마디

사람들은 모두 남의 불행을 두고 보지 못하는 마음을 가졌으며

이것은 인본주의의 발단이며 인정과 덕정을 주장하는 근거이다

측은지심은 타인의 불행을 아파하는 마음이고

수오지심은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여기는 마음이며

사양지심은 타인에게 양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고

시비지심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으로

善이 발생할 가능성을 가진 시초를 말하는것이다.

 

재임과 별유사의 거소 동재인 극복재는 자신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라는 뜻

유생들의 거소 서재인 경서재는 경으로 일상생활을 하면서 역지사지로 상대방을 배려하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