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광복운동기념공원을 찾아서
오미리에 있는 광복운동 기념공원은 일제강점기 오미마을 출신으로 광복을 위하여
2003 공원화를 발의하여 문중회의에서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후손들의 성금과
안동보훈지청의 지원을 받아 오미광복운동 기념탑과 선조행적을 기린 잠암신도비
팔련오계의 의미를 담은 연계정(蓮桂亭)을 건립하여 2008.10.11. 조성하였다.
기념탑은 연꽃모양과 계수나무 형상으로 오미동의 전통을 상징하고 겨레와 조상의
얼을 이은 독립운동가들의 기계와 애국애족의 충혼이 영원불멸의 불꽃으로
온 누리를 비춘다는 의미의 불꽃 형상으로 조각하고 기념탑뒤에는 이 지역출신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은 김순흠,김지섭,김재봉,김만수,김낙문,김병련,김구현,
김보석등 8명의 건국포상자를 포함 24명 독립운동가의 양력과 업적이 세겨져 있다.
죽포 김순흥은 1907년 고종 퇴위와 군대해산이 있자 자손들을 불러놓고 이르기를
"내가 죽거든 빈소는 차려 곡은 하되 제사상 위에 음식은 차려놓지 말라, 일제의
치하에서 자란 곡식은 일체 막을수 없으니 국권이 회복되는날 올리도록 하라"
하면서 단식을 시작하였고 며느리는 옛 곡식으로 밥을 짓고 도라지나물을 마련
하여 울면서 이 쌀은 일제치하 이전의 쌀이고 이 나물은 일제의 세금을 내지않은
나물입니다"라니 그 뜻을 기특히 여겨 맛보는척만하였고 23일만에 순국하였다.
동전 김응섭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은 약 백만명으로 경상도인이 가장 많고
평안도,함경도등의 순이었는데 풍속이 조금식 다른 탓인지 지방열이 생기기
시작해 서로 반목하는 불상사가 많았다"며 "정치활동가들이 이를 이용해
자기 기반을 구축하려했다"고 분개하였다고 하며
추강 김지섭은 옥고중 아우에게 받은글에 답하기를 "나는 너를 불쌍히 여길
지언정 너는 나를 불쌍타 하지 말라"하였다고 하는등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에 감명을 받은 시간들을 가졌다.
오미광복운동기념공원을 끝으로 죽봉 김간, 유연당 김대현, 허백당 김양진의
3분이 불천위로 추대되어 후손들이 향사하고 있는 오미동 답사를 마치고
오미마을의 광복을 위한 독립운동사에 대하여 상세한 설명을 하여 주신분께
감사드리며 우리는 예천호명 백송리 선몽대를 찾아갔다.
세상사 한마디
모기는 사자에게 두려움을 거머리는 물소에게 두려움을
파리는 전갈에게 두려움을 거미는 매에게 두려움을 준다.
아무리 크고 강하더라도 반드시 무서운 존재는 아니며
내가 최고인것 같은 사람도 항상 두려운 존재는 있는것~~
기념공원안에 있었던 300년의 청백송이 고사된것을 볼수 있었는데 행여나
기념공원을 조성하면서 보호수 주변을 훼손하거나 괴롭히지는 않았는지 안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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