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군민과 안동시민이 함께사는 구담마을을 찾아서
지보면 신풍리에서 죽고서원을 돌아본후 예천군과 안동시경계로 안동시민과
예천군민이 한마을에 살아가며 면소재지가 아닌 자연부락으로 시장이 있고
다방이 20여개가 운영되고 있는 구담(九潭)마을을 찾았다.
구담마을은 낙동강이 동.서로 흐르고 광산김씨(담암공파)와 순천김씨(국담공파)를
주축으로 평산신씨(영벽공파)와 진주류씨 일파등 400여호 거주하는 큰마을이다.
상주목사 권집경이 산천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며 터 잡아 살았으며 사람이 많고
큰 집들이 첩첩하여 강물에 비치었고 명절 길일마다 사방에서 노래부르는 소리로
이곳을 적은 서울이라 애칭했다고 하며 龜潭으로 불린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 곳에서는 이마을에 사시는 김동성님의 안내로 마을안을 구경하였다.
광산김씨 담암공파는 담암 김용석이 1472년 진사시에 합격하여 점필재 김종직의
문하서 수학하고 성균관진사로 소학을 강의 하다가 성종말엽 외가(가일 안동권씨
복야공파)인근이고 부인(순천김씨)의 고향인 구담으로 은둔해 1498년 무오사화로
스승과 김일손,정여창,김굉필등이 화를 당했으나 멸문의 화를 면하였고
자손들에게 진사는 하되 대과는 응시하지 말라고 하였다고 하고
1758.7.건립되고 2005ㅣ8.28.중수한 유허비가 구담시장부근에 있었으며
그 뒤 장엄하게 지어진 중락당은 구담정사로 당호와 소유가 바뀌어졌다고 한다.
순천김씨 국담공파는 입향조 김유온이 상주목사 권집경의 사위가 되어 구담에
정착하였고 아버지 월담 김승주는 세종때 좌의정을 지냈고 게유정란때 피화된
절재 김종서도 일족이며 임진왜란때 탄금대에서 신립장군과 전사한 의주목사
김여물과 인조반정의 일등공신으로 영의정에 오른 북저 김류 부자는 김유온의
후에들이며 입향조 국담 김유온의 신도비 2010.6.18.정비된 숭담각이 있었다.
영벽신선생남하유허비를 둘러본후 마을 가운데 남향인 시북정을 찾았는데
市北亭은 본래 임진왜란때 호조참판을 지낸 申賓이 가옥내에 대청으로 지은
정자식 건물이였으나 제사를 지내는 몸체의 방은 없어지고 대청만 남아 있고
후에 순천김씨 김종영에게 인도되어 시북정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담암선생의 유허비와 국당선생의 신도비, 영벽선생의 유허비등을
돌아보고 시북정에서 기둥의 부식방지공법을 돌아 보았으며 시북정 주변에
낡은 건물들이 방치되고 있음을 아쉬워하며 구담정사로 향했다.
상세한 설명을 하여주신 김동성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사 한마디
어느 병원게시판에 게시된 내용을 소개드립니다.
개에 물린 사람은 반나절만 치료를 받고 돌아갔고
뱀에 물린 사람은 3일간의 치료를 끝내고 갔으나
말(言)에 물린 사람은 아직까지도 입원중입니다.
무심코 내뱉은 말한마디 뱀독보다도 독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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