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는 내동기들

안동권씨 능동재사 추원루를 탐방 - 거경대학 - 오토산 (3).

아까돈보 2016. 7. 22. 10:43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9618


 


안동권씨 능동재사 추원루를 찾아서


 



 


안동터미날을 봉정사쪽으로 가면 서 서후면 소재지 가기전에  왼쪽에  능골입구에


陵洞齋舍 追遠樓 표지판이 있고 능동재사를 가기전에 신도비각이 있고 능동재사를


지나서 골짜기를 더 오르면 풍산류씨 금계재사 숭실재가 있으며 재사 건너편 산에


권태사(權幸) 묘소가 있고 재사 옆에는 청도에 있다가 옮겨온 아시조(權仁幸)의


묘소가 단장되어 있다.


 


權太師의 묘소도 失傳되어 오다가 18세손 권옹이 안동출신 이조정랑 배소의 따님과


결혼하여 풍산현 하회촌에 거주하면서 여지승람을 보다가 태사공의 묘소가 있는곳을


알고 術士와 함께 답사하여 묘곁에서 誌錫을 발견하고 그 곳에 봉분을 모았으며


묘비에 高麗三韓壁上三重大匡亞父(보)功臣權幸墓라 표기되어 있다고 한다


 


현재 권태사 묘역에 연이어 바로에 아래 묘쇼를 되찾은 평창군사 권옹의 묘소가 있고


권옹의 아들인 유와 작은 전에 살던 평창으로 돌아갔고 이 묘역 남쪽 산기슭에 권옹의


사위이자 입암 류중영의 증조부인 호군 증사복사정 유소의 부부를 합장하고


그때부터 풍산류씨가 이 곳을 대대로 지키며 수호하게 되었었으며 그런 연유로


입암 류중영의 묘소가 세번째에 소재하고 있다고 한다


 


능동재사는 권태사의 묘소 수호와 묘재를 위한 건물이며 1653년(효종4)에


관찰사 권우가 宗人들과 논의해 건립하고 1683년(숙종9) 증축, 1743년(영조19) 중건,


1896년 화재로 소실된것을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재사 입구의 신도비는 고려 태조가 병산전투에서 견훤군을 물리치고 기뻐하며


'김행이 微幾를 밝게 살펴 權道에 능한 사람이라 하겠다'하며 權으로 姓을


하사하시고 大相을 제수하였으며 1659년에 榮川군수 聖源이 사당 참배와


성묘한뒤 신도비 설립을 발의하여 세워졌다고 한다


 


이동수 박사의 설명후 권갑현(35세)교수는 시조의 아들이신 랑중공(仁幸)


선조는 시조가 '金幸'에서 사성을 받아 '權幸'으로 바뀌셨고 사성을 받은후


권씨로서 처음으로 시조와 버금간다고 하여 '아시조'라 부르고 있으며


안동권씨들은 權자를 '권세권'으로 부르지 않고 '권도권'으로 부른다는


이야기와 대종원과 총재라는 명칭도 타성씨와는 다르다는 설명과


능동이 능이있어서 능골로 불리어 왔다는 설명등을 상세하게 하셨다.


오락가락하는 비때문에 묘소에는 가지 못하고 간재종택으로 떠났다.


 


세상사 한마디


요즘 고등학생들이 많이 사용하는 유행어중에 이런말이 있단다


'빼박캔트'는 빼도박도(빼박)와 영어 'cant'의 합성어로 '빼도박도 못한다'이고


'파달어택'은 father과 attack의 합성어로 '아버지가 들이닥쳐 혼났다'이며


'복세편살'은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의 한자씩을 따온말이라 한다.


30년전의 유행어 옥떨메(옥상에서 떨어진 메주)라는 말 있었나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