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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봉 서성선생의 태실이 있는 소호헌
서산서원 탐방을 마치고 옛날 마을 서편에 넓다란 湖水가 있었고
고려때 侍郞을 지낸 蘇씨가 살았다던 소호리에
대구서씨 약봉선생이 태어난 소호헌을 찾았다.
대구서씨가 이곳에 정착한 것은 조선 명종대 함재 서해선생이 한양에 살다가
안동의 고성이씨를 부인으로 맞이하면서였고 퇴게문인이었으며 23세로 早卒,
五道 監司와 五曺 판서를 지낸 아들인 약봉 徐省은 소호헌의 내당에서 태어났다
약봉의 맏아들 경우는 우의정, 다음 경주는 종친부전청, 경빈은 현감,
동생 경주는 선조의 사위로 형제가 모두 현달하였고
그 후손들은 급제자가 121명, 삼대 상신으로 종태,영균,지수가 있고
삼대 대제학으로 유신,영보,기순으로 소호리 서씨는 명문으로 드높은 문중이다.
蘇湖軒은 조선 중종때 함재 서해(1537~1559)선생이 서재로 쓰기위해 지은
별당이라 하나 고성이씨 임청각 이명선생의 다섯째 아들로 청푼군수를 지낸
무금정 이고의 분가주택으로 건립한것을 무남독녀 사위인 함재선생에게
물려준집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으며
기와에 새겨진 용 2마리가 나는 문양(雙飛龍汶)은 민가에서 보기드문 것이고
주춧돌위에 기둥을 직접세우지 않고 평방 모양으로 귀틀을 짜 올리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운 점이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으며
동편에 연접한 건물은 아들 약봉 서성(1558~1631)의 태실이 있다.
서해선생은 17세에 장가들어 장인 이고선생의 집에 거쳐 하였고
師友와 鄕黨의 촉망을 받았으나 1559년(명종 14) 23세로 요절하였으며
약봉 서성선생은 두살때 아버지를 여의자 어머니 이씨가 서울로 집을 옮겨 살며
성균사예인 숙부 서염에게 가르침을 받아 일취월장하였고
율곡 이이와 구봉 송익필 문인으로 1586년(선조19) 알성급제하여 관직을 두루거쳤고
임진왜란때 의병을 모아 경성탈환하는데 공을 세워 오도감사와 오조판서를 지냈고
대구 귀암서원(龜巖서院)에 제향하고 있으며
약봉선생의 묘소와 종택은 경기 포천읍 설운리에 있다고 한다.
소호헌에서 문중의 유래와 소호헌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듣고
약봉태실과 순국지사 서상부공 기적비를 돌아본후
문중대표 분들께 감사를 드리고 우리는 귀미리의 자운정을 찾아갔다.
세상사 한마디
약봉의 어머니인 고성이씨 부인이 서울 낙현동에 새집을 소호헌과
같은 규모로 지어 "식구도 단출한데 집을 크게 짓느냐"는 말이 있어
"후일 반드시 창성하여 이집도 협소한 날이 올것이요"라 하였는데
본인이 77세 장수하며 아들과 손자들이 크게 번창함을 보았고
서울에 집을지을때 목수들이 세워 놓은 기둥을 손으로 만져보고
나무의 아래위가 바꿔었다고 고치게 한 일화도 있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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