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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선생을 모신 서산서원
일직소재지 목원한우촌에서 점심을 먹은 우리는
원리마을에 있는 서산서원을 찾아가던중 마을안길을 가다가
버스가 통과하지 못하여 동네안에서 회전했는데
좁은공간에서 회전하는 기사님의 운전 솜씨에 모두가 놀랐다.
西山書院은 1771년(영조4)에 목은 이색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영정(17세기 후반 모사본)을 西山祠에 봉안하고 제향하던중
1868년(고종 5) 훼철되었다가 1962년 복원하였고
1976년 서원으로 승격하여 목은선생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그의 10세손 수은 이홍조선생의 위패를 종향으로 배향하였다고 한다.
목은 초상화는 전국에 여러장이 잔재하나 원본은 전하지 않고
서산서원 소장본은 17세기 후반에 模寫한것이라 한다.
한산이씨 시조는 고려 숙종때 호족으로 권지호장인 이윤경 이고
중시조는 목은 이색의 아버지인 이곡으로 시조의 6세손 이다.
이곡은 당대 대문장이며 역동 우탁, 포은 정몽주와 더불어 경학의 대가였고
고려 충숙왕 7년 문과 그제, 원나라 제과 급제하여 도처의찬성사에 이르고
공민왕때 문하시중에 이르렀다.
목은 이색이 1362년 홍건적의 난에 왕을 호종하여 공을세워
1373년 한산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한산으로 하였고
사육신 이개, 대문장가 이산해등 조선시대 상신 4명, 대제학 2명,
청백리 5명, 공신 12명과 문과급제자 195명을 배출하였다.
서산서원의 대강당에 말벌이 집은 짓고 있어서 오르지 못하고
사당앞에서 서원의 내력에 대하여 설명을 들었으며
한분은 앞뜰에서 달래를 한움큼 캐기도 하였다.
상세한 설명을 하여주신 이동수 종손님께 감사드리고
우리는 대구서씨 소호헌을 찾아 갔다.
세상사 한마디
수은선생이 돌아가시자 외사촌인 졸재(유원지)선생은 제문에서
"시속에 超絶한 지조와 빼앗을 수 없는 뜻은
애당초 노력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절로 남들이 미칠 수 없는 것이었다"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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