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국내 여행기

안동의 기산충의원, 안동충의역사체험장 탐방 (1).

아까돈보 2016. 12. 5. 22:37


안동의 기산충의원, 안동충의역사체험장 탐방(1)


초겨울이지만 매섭지 않은 날씨가 계속되어 친구 4명과

함께 안동시 임동면과 길안면을 나들이 했다.


12월 3일 점심시간 때 이진구 학장과 최준걸 회장 등

우리 일행 4명이 구시장 찜닭골목에서 오랫만에 점심

식사로 찜닭을 먹고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위치해 있는

기산충의원(岐山忠義院) 안동충의역사체험장을 비롯하여

전주류씨 무실종택과 수애당(水涯堂) 그리고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에 있는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천년기념물 제175호)를

둘러보았다.


안동에 살면서 기산충의원은 처음 찾아본 곳이다.

이곳은 임하댐 물과 수곡교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주변 경치가 뛰어난 곳이다.


안동시와 전주류씨 수곡파는 지난 10월 8일 기산충의원

(이사장. 류목기)의 문을 열고 고유(告由)를 올려 참여했던

유림(儒林)들의 이름을 쓴 수십미터에 달하는 파록(爬錄)을  

아직까지 담벽과 건물 곳곳에 걸어놓고 있다.

이곳의 서재(西齋)인 독륜재(篤倫齋)와 봉공사(奉公舍)의

현판은 황재국 교수(국립강원대학교)가 직접 쓴 친필이다.


안동시는 지난 2013년 3월 총 사업비 35억원을 들여

이곳 부지 5,000㎡에 기영루(岐映樓)를 비롯하여 기산충의원

(岐山忠義院), 숭문당(崇文堂), 독륜재(篤倫齋), 단성재(丹誠齋),

봉공사(奉公舍) 등 크고 작은 건물 7채를 착공하여

2015년 5월 공사를 마무리 한 후 지난 10월 준공식과

함께 고유제(告由祭)를 올렸다.


이 역사체험장은 임진왜란에서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의병활동과 독립운동에 기여한 지역의 인물들을 재조명하고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안동의 충의역사와

선조들이 나라사랑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 충의 전당은 임진왜란 때 안동 수곡의 기봉 류복기

(1555∼1617)와 아우 묵계 류복립(1558∼1593), 기봉의

 다섯 아들 일가족이 목숨을 걸고 의병에 나선 장한 뜻과

 삶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류복기는 1592년 임란이 일어나자 올곧은 선비의 뜻을

세워 "이 몸이 죽음을 어찌 아까와 하겠는가? (身死可惜)"

하고 6월 1일 금역당 배용길, 운천 김용과 함께 안동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0월부터 1593년 4월까지 안동열읍향병의 정제장,

간병장(揀兵將)으로 예천 송구와 문경 당교, 경주에서 전투를

벌였으며 당교회맹록에 따르면 147인이 결사 분전하였다.


류복립은 외숙 학봉 김성일을 따라 경남일대를 방어하고

1593년 6월 29일 진주성에서 북문장을 맡다가 순국하였다.

장남 류우잠은 첫 의병 때부터 부친을 따랐고 차남 류득잠은

1596년 팔공산회맹 때 부터 3남 이하 류지잠, 류수잠, 류의잠은

정류재란 때 부형을 따라 화왕산전투에 참전하였다.

그 정신은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이어져 300년뒤 일제 강점기에는

무려 80인 넘게 항일운동에 몸 바쳐 투쟁하였다.

이러한 예는 역사상 참으로 귀한 일이다.

이에 정부는 그 뜻을 높이 기리면서 후세들에게 나라사랑

정신을 북돋아주기 위해 이곳 임동면 수곡리에 기산충의원을

건립하였다.







고유 때 참석한 유림들의 파록을 길게 걸어놓았다.



기산충의원 건립기념비.




기영루 입구.





기산충의원.


독륜재.


단성재.







봉공사.


기산충의원에서 내려다 보면 임하댐과 수곡교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