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사적 제170호 도산서원 경내에 매화꽃 만발 (1)

아까돈보 2019. 4. 3. 22:55

 

사적 제170호 도산서원 경내에 매화꽃 만발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사적 제170호 도산서원(陶山書院)

경내 매화꽃이 만발하여 장관을 이루고 있다.

 4월 1일 오후 이진구 학장과 나는 도산서원을 찾았다.

왜야하면 오는 4월 12일 부산의 친구들이 안동을

방문, 도산서원과 한국국학진흥원, 예(藝)끼마을,

성선수상길, 이육사문학관 등을 둘러볼 계획이어서

확인 점검차 이 지역을 찾았다.

 

도산서원 경내에 있는 도산서당(陶山書堂) 앞과

경내 곳곳에 매화꽃이 활짝피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봄부터 매화꽃이 피고 지고를 여러번하였으며 지금도

 매화꽃이 만개하여 고고(孤高)한 자태를 보이고 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선생이 가장 좋아했던 꽃이 매화다.

퇴계 선생은 생전 도산서당 앞에 매화를 심어 감상하였으며

 도자기로 만든 매화등은 등안에 불을켜면 매화 그림자가

 나타나 아름다움을 더해주었으며 즐겨 사용하던 벼루도

 매화무늬가 새겨져 있는 것을 애용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서원측은 도산서원 성역화사업때 경내에

퇴계 선생이 좋아했던 매화를 대대적으로 심어 방문객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다.

 

퇴계 이황 선생은 연산군 7년(1501) 현재의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출생하여 선조 3년(1570) 69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

34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단양군수, 풍기군수, 공조판서,

예조판서, 우찬성, 대제학을 지냈으며 사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70여 회나 벼슬을 사양하고 학문연구, 인격도야, 후진양성에

힘써 이 나라 교육 및 사상의 큰 줄기를 이루었고 만대의

정신적 사표(師表)가 되었다.

선생은 명종 16년(1561)에 도산서당을 세웠고 사후 4년만인

선조 7년(1574)에 문인과 유림이 서원을 세웠으며 선조

임금은 한석봉 친필인 도산서원(陶山書院)의 현판을

사액(賜額)하였다.

1970년 정부는 서원을 보수정화하여 성역화하였다.

주요 저서로 계몽전의, 성학십도, 도산십이곡, 주자서절요,

심경후론, 예안향약, 자성록 등이 있다.

 

이 서원은 조선 선조(宣祖) 7년(1574)에 건립된 것으로

퇴계 이황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후손과 제자들이 향사

(享祀)하며 후학을 양성해 온 곳이다.

이 서원은 영남유림의 정신적 구심점으로 대원군 서원철폐

당시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전국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1969년과 1970년에 정부의 고적보존 정책에 따라 성역화의

대상으로 지정되어 건물을 보수하고 유물전시관인 옥진각

(玉振閣)을 신축하여 퇴계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도산서원의 소유의 고서(古書) 1,300여종 5,000여 책과

퇴계문집을 비롯한 목판 총 37종 2,790판을 보존과

학술연구를 위해 한국국학진흥원에 위탁하여 보관하고

있다.

 

 

 

 

 

 

 

 

 

 

중국 공자 77대 종손 공덕성 박사가 1984년 11월 도산서원을

방문했을때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는 글을 남겨 비석을 세웠다.

 

비석의 뒷면에 한글로 경위를 설명해놓았다.

 

 

 

도산서원 앞에서 옛날 과거시험을 보았던 장소 시사단(試士壇)

 

 

 

 

 

 

멀리 시사단이 보인다.

 

 

 

 

 

 

 

 

 

 

도산서당 주변에는 매화꽃이 활짝피었다.

 

 

 

퇴계 선생이 4년에 걸쳐 지으신 건물로 거처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책을 보관하는 서고(書庫)로 현판은 퇴계선생 친필이다.

 

 

 

사적 제170호 도산서원. 도산서원 현판은 한석봉 친필이다.

 

 

 

 

 

 

 

 

퇴계선생 유물전시관인 옥진각.

 

 

 

 

퇴계선생이 사용하던 매화벼루(맨 오른쪽).

 

매화등(맨 오른쪽)

 

 

 

혼천의(渾天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