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麗時代에 太子詹事(태자첨사) 李襲洪(이습홍),判少府監(판소부감) 李賢呂(이현여),通禮門副使(통례문부사) 李漬(이지),大將軍(대장군) 李松(이송) 等은 延安李氏의 脈을 이어온 4大 山脈이다.이들의 後孫이 繁盛하여 오늘날 延安李氏의 主流를 이룬다.
朝鮮時代에 와서 總 250名의 文科 及弟者와 相臣(領議政,左議政,右議政) 8名, 大提學 8名, 淸白吏 7名을 輩出해 朝鮮의 名門으로서 威勢를 떨쳤다. 英祖와 純祖 때에 父子 大提學, 3大大提學을 輩出하여 名聲을 날리고 그와 함께 8旌門(정문)을 자랑한다. 孝子 李至男(이지남)에서 부터 아들, 孫子, 며느리 8名이 孝夫, 烈女로 旌門을 받아 8旌門 집안이 되었다.
李好閔(이호민)은 延安李氏가 자랑하는 外交의 名手.그는 壬辰倭亂 當時 吏曺佐郞(이조좌랑)으로 明나라의 救援兵(구원병)을 끌어들이는데 功을 세웠으며 그 後副提學(부제학)에 올라 對明外交文書를 도맡아 基礎(기초)하는
等 卓越(탁월)한 外交 솜씨를 發揮(발휘)했다.戰亂이 끝난 後 大提學,禮曺判書를 거쳐 左贊成(좌찬성)에 올랐다. 李貴(이귀)는 學者의 家門인 延安李氏의 繁榮을 政治的으로 뒷받침하여 名實共히 名門의 位置에 올려놓은 人物이었다.宣祖36年 文科에 及弟,平山府使로 있다가 光海君의 暴政(폭정)을 慨嘆하고 辭職했다.1623年 反政을 主動하여 仁祖를 擁立하여 이 功으로 大司憲, 左贊成에 오르고 延平府院君에 封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