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는 내동기들

영덕, 향암 미술관(진구 / 作).

아까돈보 2010. 11. 29. 11:37

 

 

 

 

 

 

 

온세상이 황금만능의 세찬 파도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시절,

70년대 초 우리는 40 대, 전후

한창 젊은나이의 청년들이었습니다.

 

안동 성당에 신앙생활을 하면서

서로간의 신앙을 북돋우고

젊은 혈기로 성당에 기여할걸 찾아 불태우자면서

청년회를 만들었는데

그 이름이 조금 유별난 < 누룩회 > 였습니다.

 

물론 한창나이여서 모였다 하면

말 술을 들이켜대던 때이기도 하였지만

성서에도 세상의 누룩이 되라는 말씀도 있기에

막내  김 상원 선생의 제의를 받아들여

만장일치로 합의 하였지요.

 

이름 값을 하느라 술도 어지간히 마셔대었고

열정적으로 헌신하기도 하여

안동신용조합을 키워 활성화 하는등

성당의 활력소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후 우리는 전국 곳곳으로 흩어져 살아가게되고

옛정을 잊지못해 먼저 대구에서 부터 다시 뭉쳐

누룩회를 다시 되살리고,

 

이어서 서울, 안동,기타지역등으로 분회를 만들고,

 일년에 한두차례 모임을 갖고 친목을 돈독히 하고

길, 흉사간에 빠지지않고 오고 가면서 산게

벌써 40 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눈 한번 잠깐 깜았다 뜬것 같은데

벌써 80 노인들이 되어있고

세상을 달리한 회원도 반이 넘었습니다.

 

올해도 한분이 저 세상으로 성질 급하게 가셨고

두분은 운신이 어려울 정도로 병이 깊어졌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3 ~ 40 명되던 회원도

이젠 10 가구 20 명이 전부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한결같이 함께해 주시는

김 재문 신부님이 계셔서 우리를 축복해 주시고

이번에도  울진, 후포 성당에 새로 부임하셔

우리는 그곳으로 몰려 들었습니다.

 

사제관 이방, 저방에서 밤새 술로,

격한 토론으로 밤을 하이얗게 새우고,

아무것도 아닐것 같은 얘기에도

핏대를 올려 꼭 싸우는듯 하다가도

옛정이 있어선지 금세 환한 농으로 분위기를 바꾸는

우린 그런 하룻밤을 소중하게 보내었습니다.

 

마침 막내인 김 상원 선생 장남이

같은 울진군 북면성당에 신부님으로 계셔서

우리는 옛 어린아이시절을 떠올리며

연락을 하나마나로 또 한참을 싸우듯 싱갱이를 하였습니다.

 

김 재문 신부님께서 시비를 잠재우려고

아버지 일행이 여기와서 떠들어대니

내일 와서 인사나 하라고 정리하여

끝내 평해에서 점심값을 신세지는 행패도 하고 말았습니다.

 

마침 회장인 안 종배 교수

 ( 전, 안동대, 경남대 교수,  경북 도민의 노래 작곡가 )가

작곡해준 인연으로

백암온천 입구에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길래

우리는 모두 그곳으로 가서 안종배 작곡이란

< 예 이름 소태로 > 노래비와

이 비를 세운 황 능곤 선생의 미술관을 돌아 보았습니다.

 

이 산간협곡에서 만나는

향암 미술관은 평범한 시인이고 교육자인

이 지역출신 황 능곤 교장선생님이 전 재산을 쏟아넣어 만들고

서군인  주 수일 교수 의 호를 따서 향암 미술관이라하고

화가 주 교수에게 전부 맡겼답니다.

 

 

그분이 이렇게 이루어놓은 놀라운 일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우린 부러워 하면서  

전시관 1, 2, 3 그리고 별관을 돌아 보았습니다.

 

우리는 천연염색  신 계남 명인( 회원부인)이 선물한

명품 머풀러와 손수건을 나누어 가지며

추억선물로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또 한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몇번을 만날수 있을런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한번, 한번 만남이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집니다.

 

그걸아시고 하시는 말씀인지

김 재문 신부님은 우리를 보고

언제든 찾아와 사제관에서 머물고

해수욕도,   바다 구경도

그리고 횟감도 풍부한 이곳에 스스럼없이 찾아오라고

지극 정성으로 권하시고 부탁까지 하셨습니다.

 

우린 서로 건강을 축원하면서

왔던길을 되돌아 갑니다.

 

서울로, 부산으로

대구로,  안동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