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차례 중국 북경에 있는 고궁,
청나라 시대의 황제들이 살았던 고궁을 돌아보며
그 웅장한 규모와 방대한 자료들,
그리고 거기에 담겨있는 이야기,
더더구나 마지막 황제 푸이에 대한 애증 까지,
개인적인 여행이라 충분한 시간을 내어
한번은 동쪽을 중심으로 돌고
또 한번은 서쪽으로 돌면서
여러시간을 보낸적이 있었다.
세상에 이런 궁궐이 또 있을까 싶어서
역시 < 자금성 > 이어야 고궁이라 할수 있다고
어리석은 생각을 한적이 있었다.
그런 후 차츰 우리나라 경복궁을 돌아보고
덕수궁 까지 조선 정궁을 모두 돌아 보고는
오히려 진한 감동과 만감이 교차하는 역사여행은
역시 이곳이어야 한다고 생각을 고쳐 먹었다.
그런 내가 정말 오랫만에 그가운데
가장 조선 왕들이 오래동안 머물게된 창덕궁,
숫한 조선 역사, 질곡의 중심인 법궁의 역할을 하였던
역사의 현장 그 창덕궁을 50 여년 인연의 사람과 단둘이서
마치 조선 궁궐, 동궐로도 불리웠던 이곳 창덕궁,
인정전 앞뜰에 한가한 걸음으로, 팔자걸음으로,
마치 정 일품 삼정승이나 된양 거드름을 한껏 부리며
고개도 숙이지 않고 어전을 보고 정면에서 디카를 들이대었다.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이 창덕궁은
임진왜란 후 경복궁 보다 먼저 복구되어
명실상부한 조선 제일의 궁궐의 지위를 갖고
조선 왕들이 머문 기간만 따지자면
오히려 경복궁 보다 더 길고 정궁의 역활을 했다고 할수있다.
경복궁의 위엄과 권위에 비해서
비교적 자유롭고 친환경적인 매력을 뽐내며,
자연과 조화롭게 배치된 편안한 안즘새가 더 정겹다.
다음 에 올리게 될 창덕궁 후원에서 더 극명하게 들어나겠지만
조선 궁궐의 아름다움을 빼어나게 보여주게 되겠지만,
역사는 이곳에서 임진왜란으로, 인조반정으로,임오군란으로
또 일본의 침탈기에도 대 화재로 소실되고 짓밟히는 수모를 당하였고
특히 조선 왕조의 마지막 어전회의가 흥복헌에서 열리고
대한제국 마지막 왕조가 여기서 숨을 거두었던,
아프고 뼈저린 슬픔을 간직하여
마치 소복을 입은 절세미인의 뒷모습을 보는듯
가슴은 저려오고 오그라들어 아리고 아프다.
마치 덧없이 흘려버린 우리 청춘이 서글프듯
옛 친구와 거니는 내 나들이하는 마음에도
어쩐지 휑한 바람이 지나간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기모노를 곱게 차려입은 일본여인이
무엇이 우스운지 깔깔거리며 지나간다.
그러나 우린 그저 허허롭고 웃었다.
실없이 허허 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