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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 찾아가 (8).

아까돈보 2011. 10. 18. 10:33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 찾아가 (8).

 

 

 

 

 

참소리 축음기 박물관의 음악 감상실에서

흘러나오는 둘째곡 '케세라'를 듣는 도중

핸드폰의 벨이 울렸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다른 행선지로 가야 한다"

며 노래 듣는것을 중단하고 가자는 것이다.

 

 

가자는 그곳이 바로 강릉이 낳은 교산 허균과

난설헌 허초희의 오누이 집인 허균. 허난설헌의

생가터(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59호)와 기념관이

있는 기념공원이다.

 

 

이 생가터와 기념관이 있는 기념공원은

초당마을로 강릉의 향토음식인 초당 순두부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엔 아름드리 소나무 숲으로 공원을

감싸고 있었으며 이로인해 전통적인

한옥의 멋을 더 해 주고 있다.

또 기념관 규모는 작지만 생가와 어울린

솔밭 숲과 넓은 공간들이 아늑하고

아름다웠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천재 여류시인 허난설헌

(1563 - 1589)이 태어난 집터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사실과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며

안채와 사랑채, 곳간채가 'ㅁ' 자로 배치되어

있으며 집 주위엔 담으로 둘러 쌓여 있다.

 

 

이름은 허초희, 호는 난설헌.

어렸을때부터 글재주가 뛰어 났으며 아름다운

용모와 천품을 지녔다고 한다.

난설헌은 순탄치 못했던 결혼생활, 자식들의

죽음, 친정의 옥사 등으로 인해 삶의 의욕을

잃은채 시를 지으며 세월을 보내다가 27세의

나이로 요절하는 동안  213수의 주옥같은

시를 남겼다.

 

 

조선중기 개혁을 펼친 사상가이며 최초의

한글 소설인 '홍길동전'의 저자인 교산 허균도

이곳에서 자랐다.

허균은 허엽의 세째 아들로 태어나 선조 27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좌참찬까지 올랐고

정부사로 명나라에 다섯 차례나 다녀 왔다.

 

 

 

 

 

 

 

 

 

강릉 초당마을숲 안내판. 

 

 

아름들이 소나무로 둘러 쌓여있는 기념공원. 

 

 

우리 일행이 이곳에 도착했을때 헹그라이드가 날고 있었다. 

 

 

 

 

 

허난설헌 생가터 표지판. 

 

 

허난설헌 생가터 안내판. 

 

 

허난설헌 생가. 

 

 

 

 

 

 

 

 

 

 

 

이 관장이 사진꺼리 찾기에 분주하다.

 

 

전국에서  찾아온 방문객들이 방명록에 서명해 놓았다. 

 

 

 

 

 

 허난설헌 영정.

 

 

 

 

 

 

 

 

초라한 부엌.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 표시판.

 

 

 

 

 

허난설헌의 시.

 

 

기념공원안에 5개의 시비가 서 있어 관람객에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 입구.

 

 

 

기념관 전면.

 

 

기념관 규모는 적었다.

 

 

 기념관 내부.

 

 

기념관 내부. 

 

 

기념관 내부. 

 

 

내부. 

 

 

기념관의 설립 목적이 기록되어 있다. 

 

 

기념관 전경. 

 

 

중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격찬을 아끼지 않아 당시 세계적인

여류시인으로서 명성을 떨쳤던 허난설헌.

 

 

  난설헌. 허초희 상 뒤편에 기와집 생가터가 보인다.

 

 

기념공원을 보러 온 관람객 승용차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