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산도 넘고 강도 건너
고갯길이 굽이굽이 첩첩이고,
나이가 나이인지라
아프고 불편한 몸은 기본일테이지만
배우자의 아린 사연을 가슴에 담기엔
우린 너무나 힘겹고 숨가쁘다.
무서리 내리고
찬바람 불어오는
늦가을 국화향이 저승냄새라도 될것같은
이 서글픈 가을 한나절을 함께 하려고
우리 가을 타는 사내들 몇이
하회 광덕 류교장집에 모였다.
그 첫번째 이유는
의성 다인 호천지 못가에 사는
김 수일 교장을 불러내어
촌 장터에서 아주 독한 빼갈로
시리고 아픈 가슴을 조금이라도 녹여줄 예정이었고
그건 또 우리의 마음도 녹여줄것 같은 생각에서다.
그동안 7 남매 맏이로
어린 시누이들을 업고, 제자식은 안고 키우느라
제몸 돌볼틈 없었던 부인이었던지라,
그리고 촌동네를 아우르느라
김 교장 부인은 지칠때도 되었고
속이 응어리져 탈이 날때도 되긴 했다.
그러나 너무 힘든세월을 보낸뒤라
지금은 조금 느긋하게 세월을 노니는 여유도 갖을만 한데
그리고 이제사 자식들도 다 제갈길 가서
두 부부가 오붓하게 정을 나눌때가 되었는데
덜컥 몸고장이 나고 말았다.
가까이 지켜봐 왔던 우리들은
정작 당자보다 더 가슴이 아렸다.
그런데 빼갈을 한잔 맛있게 들이키더니
< 아! 모처럼 활짝 웃어본다 ! >하고
보기좋고 넉넉한 웃음으로 우리를 편하게 해주었지만
오히려 그 웃음 뒤엔 쓸쓸한 가을바람이 휑~~하니
불어돌더니 내 목깃 뒤를 싸아 하고 지나간다.
괜찮을 거라고 덕담을 주고 받았지만
마음 고생이 오죽하겠는가?
나는 오늘도 득심골 산책길에
묵주를 돌려 가며 그의 치유를 기도하였다.
아직 그 부부는 정을 나눌 시간이
그동안 너무 경황없어 짧았다고...
그래서 잠시만 부르심을 미뤄달라고...
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고 갈길이지만
지금은 말고, 잠시 뒤에 갔으면 좋으리...
이 가을 햇볕 쨍한 나른한 오후에
하회 광덕을 거니며
마당에 앉아 나누었던 정담도
그리 다르지 않았네 그려...
낙엽지고, 홍시 짓물러 떨어지더라도...
류 길하 교장 부인은
바깥분 잘못만나 손 추는 일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우리도 갈때마다 너무나 큰 신세를 졌다.
오늘도 여전히 웃으며 맞아주시고
맛있는 차로 우리 가슴을 데워 주셨다.
김 수일 교장은
언제 봐도 넉넉하고 여유로운데
어디에 그늘이 자리할수 있을건가
아마 이 웃음모양 밝은 세월이 기다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