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계종택과 500년의 밤나무
오늘(2012.6.11) 사진전문가이신 이중호선생님과 김휘동전안동시장님께서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온계선생 종택 앞에 있는 수령 500여년된 밤나무를 촬영하러 가신다는 말씀을 듣고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서 함께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카페에 올리기 위하여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만 사진 전문가들은 전문사진기로 이른 새벽 동트기 전에 촬영 현장에 도착하여 여러각도에서 구도를 맞춰보면서 매우 신중하게 작품사진을 촬영하였습니다.
온계종택
온계 이해(1496~1550)선생은 퇴계선생의 형님으로 선생이 20세 되던 해 노송정 본가에서 분가 이곳에 집을 지어 정착하고 온계선생이 성균관에서 수학하는 동안 퇴계선생이 어머니 춘천 박씨를 모시고 5년간 거처했던 곳입니다.
온계종택은 12대 후손인 지암(芝庵) 이인화(李仁和) 의병장이 1895년(고종 32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내려진 단발령에 반발 예안에서 군사를 모아 의병을 일으켰으며 퇴계종택과 나란히 안동유림 의거의 중심이었습니다.
구한말 1896년 일본군의 방화로 소실된지 110여년만에 부지 1천611㎡에 건평 256㎡ 규모로 사랑채, 안채, 대문채, 삼문, 사당 등 소실 전의 모습 그대로 2011. 5. 5 낙성식을 갖고 제모습을 찾게 되었습니다.
500년의 밤나무
온계종택 앞에는 온계선생께서 심으신 500여년 밤나무가 아직도 밤꽃을 피우고 오랜 역사만큼이나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데 어찌된 연유인지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노 밤나무가 보호수로도 지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500여년간 이나라의 역사와 온계종택을 지키고 있는 노밤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
역사적인 인물 : 온계(溫溪) 이해(李瀣,1496 연산군 2년∼1550 명종 5년)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진보, 진사 식(埴)의 아들이며 퇴계 이황의 형이다. 1528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어 경상도진휼경차관(慶尙道賑恤敬差官)· 좌승지· 도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이기의 원한을 사게 되었다. 1549년에 청홍도관찰사를 거쳐(퇴계선생은 단양군수에서 풍기군수로 전임) 1550년에는 한성부 우윤이 되었다. 귀양가는 도중에 양주에서 병사하였다.
시호는 정민(貞愍)이다. 복구된 온계종택 이른아침 해뜨기전의 온계종택
이 목종손
종택을 지키고 있는 노송
요산정 500년된 밤나무 당시 온계선생께서 지네를 견제하기 위하여 밤송이가 있는 밤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밤나무는 왜 보호수가 될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 지역 주민 우측은 온계선생 종부 소나무 넘어보이는 것은 온계선생이 태어나신 노송정본가 종택옆 느티나무 밤나무 주변 담배밭
온계종택에 걸린 조순전총리님의 현판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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