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는 내동기들

서원건축사의 백미 안동 병산서원 - 오토산.

아까돈보 2015. 7. 20. 23:23

 

 

사진이나 동영상이 잘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8370

 

우리나라 서원건축사의 백미 병산서원

병산서원(屛山書院)은 임진왜란시 국가존망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명재상

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1542~1607) 을 제향하는 곳으로 하회상류 병산리에 있다.

고려말부터 풍산에 있던 풍악서당(豊岳書堂)을 1572년 서애선생이 이곳으로 옮기고

후진양성을 하였고 1613년 그의 문인 우복 정경세가 중심이 되어 서애선생을 모신

사당을 짓고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여 오다가 1620년 유림의 공의로 선생의

위패를 여강서원으로 옮기게 되었고 1629년 위패를 별도로 봉안하고 그의 아들 수암

 류진을 추가 배향한후 1863년에 병산서원으로 사액하였고 서원철폐령때 존치되었다.

경내에 사당인 존덕사와 신문. 전사청이 있고 강학공간으로 입교당, 동재 명성재,

서재 경의재가 있으며 장판각,만대루,복례문,주사등이 있다.

 

만대루(晩對樓)는 정면7간 측면2간의 2층 루각으로 기둥은 다듬어 지지않은

그대로 사용되어 있고 사방이 트여진 누마루에 앉으면 앞에 펼쳐진 푸른 병산과

쉼없이 흘러가는 낙동강의 맑은물에 빠져들어 세속에 찌든 사람들의 심신을

 맑고 깨끗하게 씻어 주고 누각의 이름은 당나라 시인 두보가 삼국지의 유비가

최후를 맞은곳으로 유명한 白宰城 절벽위의 樓臺를 바라보면서 지은 시의

 '취병의만대(翠屛宜晩對)에 종일토록 바라보아도 싫지 않다'는 뜻에서 만대루라

하였으며 이곳은 아침 해뜰때부터 저녁 해질때까지 하루종일 아름다움을

느낄수있는 곳이다.

 

 서원건축의 입지조건에서 가장중요한것은 서원안에서  보이는 외부의 공간이

중요하고 교육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설립한 서원건축물의 공간은 동재와

서재는 마주보면서 유생들 서로간의 격려와 감독을 통한 긴장을 유지시키고

원장실과 강당에서는 동.서재에서 행해지는 거의 모든행위를 볼수있어

자율적이면서도 타율적인감독이 가능하도록 마당을 향해 개방되어 있다.

유생들이 항상 긴장만 할수없으므로 긴장감을 전면 누각에서 해소시켜 주어

강과 약, 양과 음, 긴장과 이완이 공존하는 공간적 개념이 유지되어  대한민국

최고의 건축물이라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는 입교당 마루에서 서원의 유래와 유교.불교.도교.풍류도의 우주론에 대한

강의를 듣고 소학.대학의 성독을 하면서 주변의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을가졌다.

오늘도 강의에 열중하여 주신 이동수 박사에게 감사를 드린다.

 

세상사 한마디

당신의 오늘과 나의 오늘이 얽혀있다면 사랑이고

당신의 내일과 나의 내일이 얽혀있다면 행복이며

당신의 내일과 나의 내일이 닮아있다면 축복이다

사랑. 행복. 축복이 당신과 나의 삶에 녹아있길...

 

복례문은 서원의 정문으로 논어 안연편 克己復禮 爲仁에서 취하여

사람마다 욕망과 탐욕의 유혹을 이겨내고 예로서 자신을 절제하여

유학의 종지(宗旨)인 인을 이룩하라는 의미

 

 

 

 

입교당은 서원의 강학공간으로 소학 입교편에서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착한 본성에 따라 인간윤리를 닦아가는 가르침을 바르게 세우는 의미

경의재는 서원의 서족 협실로 주역 곤괘 敬以直內 義以方外에서

경을 통하여 마음을 곧고 바르게 하고 의로서 몸을 바르고 옳게 행동하라는 의미

동직재는 서원의 동재 정허재는 서재로 주렴걔의 통서 제20 성학편에 나오는 말

-爲要-者無欲也-靜虛則明 明則通  動直則公  公則薄 明通公薄庶矣乎

한결같음이 요체이나 한결같음이란 욕심이 없는것이다.

고요할때 텅비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이치에 통하게 된다

움직일때 곧으면 공평하게 되고 공평하면 모든일을 널리 처리할수 있다

밝아서 통하고 공평하여 넓게되면 성인의 도에 거의 가까워지지 아니하겠는가?의 의미

 

입교재에서는  제비가 함께 살면서 배우고 있었어요

병산서원 방문기념으로 받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