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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사적 제478호 화성행궁 탐방 (4).

아까돈보 2016. 2. 12. 06:53

 

수원, 사적 제478호 화성행궁 탐방 (4).

 

수원화성에서 임금을 상징하는 용머리 형상의 관광열차를 타고

팔달산 정류장에 도착했다.

열차를 타고 가면서 수원화성 성곽둘레가 약 5.7km, 성곽의

높이는 4∼6m로 정약용이 설계했다는 안내서비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동중에는 주요 시설물에 대한 안내서비스가 한국, 영어, 중국,

일본 등 4개국어로 제공되고 있었다.

 

이 화성은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이 1794년 1월에 착공하여

2년 후 1796년 9월에 완공한 성곽이다. 이후 200여 년 동안

성곽과 시설물이 무너지고 특히 한국전쟁으로 크게 파손되었다.

그러나 축조 상황을 기록해 놓은 「화성성역의 궤」에 의거,

1975년부터 보수. 복원하여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우리는 열차에 내려 화성행궁(華城行宮)에 들어섰다.

수령 600년 넘은 노거수 느티나무에 소원을 적어서 걸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때문에 소원지가 많이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늙은 느티나무의 일부 몸체는 죽어 있으나 그 옆에 어린 새싹이

돋아나 자라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행궁인 화성행궁은

역사적인 가치 뿐만 아니라 한류를 이끌고 있는 영화 및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대장금', '이산', '해를 품은 달', '왕의 남자' 등을 이곳에서

촬영하기도 했다.

 

우리는 화성행궁에 들어가서 약 2시간에 걸쳐서 각종 건물과

시설물들을 들러 보았다.

 

화성행궁은 정조대왕 3년(1789) 수원 신읍치 건설 후

수원부 관아와 행궁으로 사용되었다가 1794∼1796년 수원화성

축성 기간에 증축하여 최종 완성되었다.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의 원침인

현룡궁(현재의 융릉)을 13차례나 찾았던 정조대왕은 참배 기간 내

화성행궁에서 유숙하였다.

 

건립 당시 600여 칸으로 정궁(正宮) 형태를 이루며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행궁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와서

낙남헌(洛南軒)을 제외한 시설이 일제의 민족문화의 역사

말살 정책으로 사라졌다.

그후 1996년 복원공사가 시작되어 1단계 복원공사가

2003년 10월 완료되어 일반에게 공개하게 되었다.

현재 장춘관 등 4개동 94칸을 복원하는 2단계 복원사업을

추진중이다.

 

 

 

 

화성행궁 앞에 넓은 광장이 보인다.

 

 

 

화성행궁 매표소.

 

 

 

 

드라마 대장금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느티나무에 소원지를 많이 걸어놓았다. 

 

 

 

좌익문(左翊門).

 

중양문(中陽門).

 

 

 

봉수당(奉壽堂).

 

 

 

 

 

 

 

 

글 읽는 환관.

 

 

 

 

 

 

혜경궁 홍씨 진찬상.

 

 

 

복내당(福內堂).

 

 

드라마 대장금에 나오는 배우들.

 

 

 

 

 

 

 

 

 

 

외정리소(外整理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