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는 내동기들

안동, 금난수 선생의 종택 성재종택 - 오토산 (8).

아까돈보 2016. 3. 21. 22:37

 

금난수선생의 종택 성재종택(惺齋宗宅)

 

 

후계정을 나와 봏화금씨 입향조 금숙의 현손인 금난수선생의 종택을 찾았다.

봉화금씨는 琴淑이 고려때부터 이 마을에 살아온 權簡의 사위가 되면서

이 곳에 정착하여 자녀 7남2녀중 다섯 아들이 모두 문과에 급제한 이후

五子登科基로 이름이 났으며 학문과 벼슬을 이어 명문가를 이루며

현손 금난수(1530~1604)선생으로 이어져 왔다.

 

성재종택은 성성재 금난수선생의 종택으로 원래 부포마을 못아래 있었는데

안동댐으로 인하여 현 위치인 호소골로 이전하였으며 금난수선생은

퇴게선생의 제자이며 월천 조목과는 처남매부지간이다

성성재는 25세때 동계가에 작은정자를 세웠고 퇴게선생이 친필로 '성재'라

내려주시고 아름다운 경치를 읊은 八詠詩를 남기고 바위이름을 지었으며

선성지의 기록에 퇴계선생이 재는 惺惺, 당은 活源, 대는 臨鏡, 風乎,

摠春등이 있고 동계가 바위에 임경대와 활원당의 글씨가 있다고 한다.

 

성재종택을 돌아보고 종택앞 도로 건너편의 개울가로 가서 이 동네에 사셨던

이태원 별유사님은 저수지가 있던곳은 메워져 과수원이 되었다고 하였고

 저수지가에 건물이 있는곳이  이명우싸가 살던 집터라고 설명을 하였다.

활원당은 갈대숲에 쌓여 있었고 그앞의 임경대 암각글씨는

건너 보였으나 사람이 들어갈수 없는곳에 방치되어 있었으며

우리지역이 타 지역보다 고가옥과 문화재가 너무 많아서

이렇게 소홀하게 관리 되고 있는것은 아닌지  아쉬워하며 부라원루로 갔다.

 

세상사 한마디

1947년 퍼시 스펜서가 레이다용 마이크로파 발생장치를 연구하다

 주머니속의 초코렛이 녹은것이 마이크로파 작용임을 알고

1.67m 340㎏ 최초 전자레인지(레이더레인지)를 제작하여

중산층의 연간 수입보다 더 많은 3천달러에 판매했다고 한다.

관심을 가지면 주변사람들도 편리하고 돈도 벌고 ㅋㅋㅋ

 

 

 

 

 

 

 

 

 

 

 

문틀과 쪽문이 이색적이었어요

 

도로를 건너가는 통로박스

잡초속에 묻힌 활원당과 임경대

 

성성재에서 쳐다본 부라원루와 부라원루에서 내려다본 성재종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