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을 모방한 99칸 번남댁(樊南宅)
계상고택을 돌아본후 우리는 宜村里에 있는 번남댁을 찾았다.
의촌리는 도산서원 강건너 마을이며 1914년 의인(宜仁)과 섬촌(剡村)을 병합하여
도산면 의촌리로 편입되었고 선성지에 의하면 의인은 고려 공민왕때 현이었고
어진사람들이 살고있는 마을이란 뜻이며 댐에 수몰되고 현재 20여가구 남았다.
번남댁은 번엄 李同淳(1779~1860)의 고택으로 집앞에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다.
이 건물은 대원군 집정시 번엄의 손자 左山 李晩胤이 서울의 창덕궁을 모방해
99칸을 지었으나 6.25전란으로 일부가 없어지고 'ㅁ'자 본채와 'ㅁ'자 사랑채로
본채와 사랑채 사이에 행랑채를 포함하여 50칸 정도가 남아있다고 한다.
번남댁은 전면 보수중이어서 전체가 해체된 상태에서 구들구조, 벽체, 지붕등
한옥건물의 발가벗은 모습을 상세하게 볼수 있는 기회를 가질수 있었다.
지붕틀의 구조와 벽체의 구조등 요즘에는 보기드문 한옥의 건축기법을
상세하게 볼수있었으며 보수가 끝나면 아름다운 옷을 입은듯한
또 다른 모습으로 볼수있는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다.
번엄 이동순은 퇴계선생의 둘째손자 이순도의 후손으로 이귀천의 아들이고
번엄의 아들은 치옹 이휘부이며 치옹의 아들 좌산 이만윤은 번남댁을 짓고
三乎堂기문을 지었으며 기문글씨는 아들 이중태가 썼다.
'삼호'란 논어 학이편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남을 위해
일을 계획하되 불충하지 않았는가 친구와 교제함에 신의를 잃은바 없었는가
전수 받은바를 익히지 않은바는 없는가'에서 취한것이며 사랑채에는
대원군의 친필인 '左山'이란 현판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번남댁을 지나 우측편에 수월헌 이집(1672~1746)의 정자인 江亭이 있었으며
수월헌은 퇴계의 현손 교관 영철의 아들로 재취부인 안동권씨의 3남1녀중
막내아들이며 사냥중 우연히 꿩을 숨겨준 연연으로 권씨와 재혼하였으며
어머니 음덕으로 수월헌은 풍천임씨와 결혼하여 8남2녀를 얻어 번성하였고
어머니묘소도 꿩이 잡아준 명당터라 후손들은 꿩을 잡지 않는다고 하며
강정은 관리가 허술하여 일부건물은 훼손되어 가는것이 아쉬웠다.
우리는 오늘의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중에서 도산별곡 시조창과
경제잠,숙흥야매잠 암송으로 경전을 익히는 시간을 가졌으며
답사에 상세한 설명을 하여주신 이동수박사와 이태원별유사님께
감사드리고 시조창과 경전 암송을 하여주신분들께도 감사드리며
함게 하여주신 모든 회원님들께도 감사를 드리고 답사를 마무리 한다
세상사 한마디
<퇴계선생의 청량산가>
靑凉山 六六峰을 아는이 나와 白鷗
백구야 헌사하랴 못믿을 손 桃花로다
도화야 떠나지 말렴 魚舟子알까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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