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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동 풍산김씨 허백당종택을 찾아서
도산서원居敬大學에서 4월9일 풍산 오미동과 예천 백송, 신풍리 답사를 위해
풍산장터 황가네식당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풍산 오미동 허백당 종택을 들렸다.
이동수박사 13회째를 거듭하고 신규회원이 10명늘어나고 있다고 반가워 한다.
오미마을은 사방 산으로 둘러쌓인 마을로 동쪽 태백산에서 뻗어내린 아미산이
청룡,서쪽 도인산이 백호, 남쪽 검무산이 주작, 북족 학가산의 줄기의 죽암봉을
현무를 이루고 있으며 72가구중 풍산김씨가 50가구 살고 있다고 한다.
오미마을은 다섯가닥의 산줄기가 뻗어내려 오릉동이라 부르다가 유경당이
낙향해 陵이 임금무덤을 뜻하기도 하고 자손들은 벼슬을 하지말고 농사나
지으라는 뜻으로 이랑묘(畝)를 써서 五畝洞이라 바꾸었다가 오미동이 되었다.
풍산김씨 시조 김문적(金文迪)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아들 김은열의 후손으로
고려 고종때 공을 세워 좌리공신에 책록되고 豊山伯에 봉군되었으며
손자 김연성이 충렬왕때 찬성사를 지내고 五陵洞(現오미동)에 별장을 두었고
후손들은 松都거주 조선개국후 漢陽으로 이주하였다가 조선초 김연성의 현손
金子良(병조판서)이 왕자의 란에 연루되어 죽자 동생 金子純이 화를 피하여
이곳에 정착 은거하였으며 김자순의 손자 진산군수 김휘손과 증손자 청백리인
대사헌 허백당 김양진이 한양에 살았으나 예조좌랑인 아들 유경당 김의정이
인종이 승하하자 세자때 世子侍講院司書을 지낸 충격으로 병 핑계로 낙향하여
호를 潛庵으로 고치고 아들 이름을 金農으로 고쳐 초야에 뭍힐뜻을 다졌다.
허백당 증손자 유연당 김대현은 여덟아들을 모두 사마시 합격하고 오형제가
문과급제하여 인조가 여덟송이의 연꽃과 다섯그루의 계수나무와 같다하여
八蓮五桂之美라 치하하고 五畝洞을 五美洞이라 바꾼이름을 하사하고
마을앞에 봉황려(鳳凰閭)라 편액한 문을 세우게 하였다고 한다.
허백당종택은 1576년 유연당 김대현이 지었고 임진왜란때 소실되었고
유연당의 아들 김봉조가 다시 지었고 서편 큰사랑채는 1614년 지었다고 한다.
마을입구의 구시나무거리(九樹木街)는 유연당이 장자 김봉조를 시켜 임란때
소실된 종택을 중건케하고 멀리서 동리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虛함을 보완해
풍수 비보림으로 동구에 왕버들 아홉그루를 심게 하였는데 그중 한그루는
일찍 고사하였고 우연의 일치인지 아들 9형제중 한분은 17세에 익사하였고
여덟아들이 사마시에, 다섯아들이 대과에 급제하였고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은 왕버들 다섯그루가 남아 보호수로 지정하여 대과목이라 불리어지며
구수목가가 구전되면서 '수'자가 '시'로 변해 구시나무거리로 부르기도 하고
400년 마을을 지켜 후손들은 성스러운 수호목으로 숭상하고 있다고 한다.
허백당종택에서는 출입문의 나무돌쩍이 신기하였으며 내외담도 볼수있었고
마을의 유래와 종택에 대하여 상세한 설명을 하여주신분들게 감사드리며
다음은 동네입구에 있는 화수당을 보고 영감댁과 학암고택을 돌아본다.
세상사 한마디
글자 한획으로 인생이 기적적으로 바뀌어 진다
고질병을 고칠병으로, 빚을 빛으로, 心을 必로
Impossible(불가능)을 I'm possible(가능)으로
불가능한 모든것도 한순간의 마음을 바꾸면
모든것은 가능한것으로 바뀔수 있는것을~~
출입문의 나무돌쩍과 바깥에서 내당을 보이지 않게하고
내당에서 사랑의 손님을 확인하는 내외담
우리일행을 안내하시기 위해 나오신 마을분들 고맙습니다
마을의 유래에 대하여 상세한 설면능 하여주시는 종손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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