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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들마을 석계종택과 광산문학관 탐방
내앞마을을 나선 우리는 언덕위의 마을이라 불리는 두들마을에 도착하여
여중군자 장계향예절관에서 석계 이시명선생 종손을 만나 마을유래를 들었다.
두들마을은 1640년(인조18)에 石溪 李時明(1590~1674)선생이 병자호란
국치를 부끄러워 여겨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을 이루게 되었고
그의 사후 넷째 이승일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재령이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하며
고려 고종때 국립병원인 광제원이 있어서 '원두들'이라 불리다가 '원리리'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정부인 장계향(1598~1680)선생은 만석꾼 재산을 구휼(임진왜란,정유재란)하여
구민한것이 마음에 들어 재령이씨 집안의 1610년 셋째며느리로 시집가서
맏며느리 역할을 하였고 분가할때 '내가 노력하지 않은 재산은 내것 아니다'며
재산을 받지 않고 나와 작은 석계고택에서 검소하게 생활하며 자식들에게
樂飢臺(배고픔에서 즐거움을 찾아라)와 洗心臺(마음을 속이지 마라)에서
安貧樂道를 가르치며 본인이 글을 하시는것을 남편과 자식들에게도 숨기시며
본인을 낮추는 자세로 사셨다고 종손님이 자랑을 하신다.
퇴계학통이 석계-갈암-밀암으로 3대가 이어졌고 정부인이 안동장씨, 재령이씨
두가문을 일으켰다고 자랑하시는 종손님은 지금은 풍요속에 빈곤하게 살며
인간성과 존엄성이 없어져가는것이 안타깝고 국가관과 사회관이 가정교육에서
나온다고 하시며 가정은 인류의 최초의 학교이고 부모는 최초의 스승이라고
강조를 하신다.
종손님의 음식디미방과 집안의 내력에 대하여 이야기하시는데 빠져 시간을
보내고 나니 마을을 돌아볼 시간이 없어 광산문학관에서 이문열작가를 만나고
석계선생님과 정부인 안동장씨가 사시던 조그만 석계고택을 돌아본후 다음
기회에 마을구경을 다시 하기로 하고 상세한 설명을 하여주신 종손님과 우리와
자리를 함께 하여주신 이문열 작가님께 감사드리며 객주문학관으로 떠났다.
세상사 한마디
치약용기 아랫부분에 짧고 굵은 세로줄로 표시된 아이마크(Eye mark)는
치약뿐 아니라 썬크림같은 화장품, 연고류의 약품등에도 표시되어 있다.
튜브제품은 만들때 뚜껑을 봉한 다음 밑부분으로 내용물을 채워넣고
용기를 밀봉을 하는데 기계 센서에 용기중심을 인식시키는 표식으로
제품용기의 바탕색갈에 따라 인식하기 좋은색갈로 다양하게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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