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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포 정탁선생의 흔적을 찾아서
신라숯불에서 돼지고기 수육과 국수로 점심을 먹은 우리는 약포 정탁선생 영정이
모셔진 정충사를 거쳐 도정서원과 읍호정을 돌아보며 약포선생의 흔적을 찾았다.
藥圃 鄭琢선생(1526~1605)은 청주정씨이고 조선중기 문신으로 대사헌을 비롯한
6조판서를 역임하고 좌.우의정을 거쳐 영중추부사를 지냈다.
임진왜란시 좌찬성으로 왕을 의주까지 호종했고 죽음을 무릅쓴 상소(신구차)로
옥중의 이순신을 극력 伸救하여 죽음을 면하게 하여 전란의 공을 세우게
하였으며 영의정으로 증직되었다.
靖忠祀는 약포선생의 憂國.忠君.愛民정신을 기리기 위해 1980년 영정각, 유물각,
장판각을 세웠으나 영정과 유물은 국학진흥원에 이관하여 관리 있고 약포영정은
1604년(선조37) 왕명으로 화공을 보내어 79세 초상을 그린 조선중기 功臣圖像의
대표적인 전형으로 1756년(영조32)에는 임금이 御製畵像讚을 지었다고 한다.
道正書院은 약포 정탁선생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640년 향현사를 세워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1700년(숙종26) 사림의 성금으로 강당채를 세우고 1786년
약포선생의 셋째아들 청풍자 정윤목을 종사하고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89년 묘우와 강당, 1993년 관리사, 1997년 입덕문, 자성재, 지경당, 전사청을
복원하였다고 한다.
挹湖亭은 약포선생이 76세때 좌의정을 사임하고 예천에 낙향하여 내성천에서 배를
저어 고기잡기로 소일하며 민중을 보살피면서 마지막 生涯를 정리한 곳으로
낙향때 나라에서 내리는 恩典을 사양하고 고향 인근의 낙동강 관리권을 받아서
지금의 고평들을 개간하여 인근 사람들의 농토기반을 마련해주었고 협동자치규약인
고평동계약문을 만들어 지역사회의 安寧和合과 隣保相助의 미풍양속을 이룩하였다고
한다.
정충사를 돌아보고 도장서원입구에 도착하니 표지석에 4㎞란 안내가 있어서 더위에
고생을 하겠구나 하였더니 거리는 얼마되지 않았으며 동재와 서재의 그늘에 앉아서
해설사님으로부터 약포선생은 금당실 외가에서 태어나 안동와룡 지내리로 이거하여
살다가 17세때부터 고평리에서 생활하였으며 예천군에서는 약포선생의 뮤지컬을
매년 공연하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고 읍호정에 올라서 내성천 건너의 한맥골프장을
바라보며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둘러보고 두분의 해설사님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우리는 마지막 체험코스인 진호양궁장으로 떠났다.
세상사 한마디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주는것은 잡귀를 쫏기위한 목적이었으며
붉은색으로 액운을 막고 조문객들 대접이 쉽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육개장의 '육'은 소고기, '개장'은 개고기를 끓인국을 말하고
우리 조상들은 삼복더위에 보양음식으로 개장을 즐겼으며
개장이 입에 맞지 않는 사람을 위해 소 양지머리로
국을 끓였던것이 육개장의 출발이었다 한다.
단청이 화려하다
신라숯불에서 맛있는 점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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