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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하씨 창열서원을 찾아서
간재종택을 나선 우리는 송야천변의 솔밤마을에 위치한 진주하씨 창열서원을
찾았다.
창열서원에는 하재인 전시청국장님과 문중어른 한분이 나오셔서 우리들을
맞이 하였고 由義門을 지나 사당에 참배를 드린후 비가 와서 곧바로 강당인
숭열당에서 문중의 유래와 서원의 유래에 대하여 설명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彰列書院은 계유정란시 사육신의 한사람인 단계 하위지 선생의 학문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되었고 1804년(순조4)에 彰列祠를 지어 위패를 봉안하였고
서원은 1809년(순조9)에 서후면 송야리에 창건하였으며 그 후 사림의 중의로
서후면 이개리로 이건하였다가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으며
1989년 사림과 후손들에 의해 현 위치에 복설되어 매년 음력 9월2일에 제향,
사당인 창열사에는 단계선생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고 강당인 崇列堂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어 문중 행사와 유림 회합장소로 사용되며
서원앞 종택에는 단계 18세손 하용락씨와 종부 강순희씨가 살고 있다고 한다.
丹溪 河緯地(1412~1456)선생은 청송군수, 충청도관찰사를 지내신 拱北亭 河澹의
사형제중 둘째로 선산읍 영봉리에서 출생하시고 진주하씨이며 어릴때부터 형
강지와 함께 학문에 전심하였고 1438년 식년문과에 장원급제 하여 집현전 부수찬
으로 근무하다가 병으로 사직하자 세종이 약을 내려 고향에 가서 치료케 하였고
경상감사에게 전지하여 그 의 구료를 하게 하였다고 한다.
1444년 집현전 부교리가 되어 '오래의주'의 상정에 참여하였고 1446년 동부현감인
형 강지가 모함을 당하여 전라감옥에 갇혀 병이 위독하여 관직을 사직, 전라도로
내려가 형의 벙을 간호하였으며 1448년 집현전 교리로 복직되고 이듬해 춘추관의
사관으로 '고려사'개찬에 참여, 1450년(문종즉위년) 장령에 임명되었다.
1453년(단종1) 장령에서 집의로 승진되었고 수양대군의 의견에 반대하여 집현전
직제학에 전보되자 사직하고 신병치료차 경상도 영산의 온정에 내려갔으며
그뒤 1454년 집현전 부제학으로 복직되자 대궐옆에 있는 불당이 왕실에 이롭지
못 함을 들어 훼철할것을 주장하였고 경연에서 시강관으로 왕에게 경사를 강론
하였으며 이듬해 예조참판으로 세자우부빈객을 겸했고 세조 즉위후 예조참판에
임명되었으나 세조의 녹을 먹는다느것을 부끄럽게 여겨 봉록을 따로 한방에
쌓아두고 먹지 않았다 한다.
1456년(세조2) 사예 김질의 고변으로 단종 복위운도이 탄로나 주모자의 한사람으로
국문을 받고 살해되고 선산에 있던 아들 화와 박도 연좌되어 사형을 받았다.
숙종31년(1705)에 국명으로 선생의 계제 紹地의 자 源으로 하여금 繼後奉祀하라는
교지가 있었고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노량진 민절서원, 영월 창절사, 선산
월암서원등에 제향되었고 시호는 충열이라 한다.
이동수박사와 하재인국장님의 설명을 들은후 국장님과 문중 어른에게 감사를 드리고
비를 맞으며 다음 방문지인 안동권씨 복야파의 관물당을 찾아갔다.
세상사 한마디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세대의 마음이 드러난 신조어도 있다.
'노오력'은 노력보다 더 많은 '노오력'을 해도 안된다는 뜻
'나일리지'는 나이와 마일리지의 합성어로 마일리지가 쌓이는것처럼
나이를 먹으면 이익이나 권리를 당연하게 누리는 사람을 비판하는 말
'개저씨'는 개와 아저씨의 합성어이자 '개념없는아저씨'의 준말이란다
창열서원에서 내다보이는 중앙선복선화 현장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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