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나 동영상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9627
의성김씨 학봉종택을 찾아서
관물당답사를 마치고 마지막 연수로 찾은곳은 금게리의 의성김씨 학봉종택을
찾았더니 매번 그랬듯이 한복 두루막차림의 종손님이 종부님과 함께
서울에 가셨다가 막 내려오시는길이라고 이야기 하시며 우리를 맞는다.
이 곳에는 수차례 방문을 하였지만 올때마다 손님들에게 다과를 접대하시고
내외분의 영접과 환송인사를 받으며 옛 선비들의 접빈객 모습을 느끼고 간다.
오늘도 학봉기념관에서 유서통(왕의 유서를 넣어 다니던 통)을 보면서 조선시대
문서를 전달하던 사람은 어느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하였고 지금 친구들끼리 앉아
'유세통졌나 왜그리 뻣뻣하냐?'는 농담을 하는데 요즘은 국가의 기밀문서를
유출하여 국가의 안위는 생각도 없이 세인에게 공개하여 잘된것인지? 잘못된
것인지?를 가리는 한심한 세상을 보면서 살아야하는 국민들이 안타깝다.
석문정 지을때 송암선생이 산을 주어 좋은곳에 정자를 지었다는 고마움의
설명도 아끼시지 않으셨다.
義城縣 제일의 土姓인 義城金氏는 麗末에 士族으로 성장하여 안동으로 이주
하면서 전형적인 嶺南士林派로 발전한 가문이며 鶴峰宗宅은 학봉선생을 비롯해
장손인 단곡 김시추, 11대주손 서산 김홍락, 13대주손 김용환등 저명한 유학자와
구국지사의 얼이 깃든 건물이다.
鶴峰 金誠一(1538~1593)선생은 퇴게문하에서 수학하였고 27세 진사시에,
1568년(선조1) 31세로 증광문과에 급제하였고 사은사 서장관으로 명나라로 가서
宗系辯誣(조선개국부터 선조때까지 명나라 서적에 이성계가 이인임의 아들로
되어있는것을 고침)를 위해 노력하였고 나주목사를 거쳐 관찰사에 이르렀다
일본 통신사로 가서는 直節不屈하였고 이듬해 돌아와 정사 황윤길의 왜구가
반드시 침공할것이라는 복명과 달리 '왜구가 군사를 일으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상반된 견해를 밝혔다
택당 이식은 해사록(海槎錄) 발문에서 '복명에 있어서 동행의 보고는 겁에 질려
사신의 체통을 잃었던 자기네의 허물을 뒤덮기 위한 방편으로 왜구가 침공할것
이라 하였고 학봉은 어지러워진 민심을 수습하여 국기를 튼튼히 하는것이 더욱
다급한 사항이라 상반된의견을 피력한 것이다. 또한 조정에서도 학봉 말을 따라
왜적에 대한 방비를 늦춘것도 아니었으니 학봉만을 허물할수도 없는일이다'고
적고있다.
학봉선생 15대종손 김종길님의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학봉기념관과 종택을 들려
사당에 참배를 하고 유물관(雲章閣)을 돌아본후 풍뢰헌에서 파락호 김용환선생의
독립운동이야기와 딸 김후옹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과를 먹고
오늘의 담사를 마쳤다.
오늘 답사에서 우중에도 각 답사지에서 상세한 설명을 하여주신 문중어른분들께
감사를 드리고 안내와 설명을 하여주신 거경대학 관계자분들과 함께하신
모든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http://blog.daum.net/uh512/8165(의성김씨 학봉종택)에서 더 많은 내용을 보실수도
있음을 안내드립니다
세상사 한마디
임진왜란때 학봉선생이 조종도 이로와
함께 촉석루에 올라 결의를 다진 시
囑石樓 三壯士詩
矗石樓中三壯士 一杯笑指長江水
長江之水流滔滔 波不渴兮魂不死
'멋있는 내동기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동, 의성김씨 학봉종택 탐방 -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 오토산 (2). (0) | 2016.08.02 |
---|---|
안동시 풍천면 용금식당과 남후면 하아리 월야수산 구경 - 오토산. (0) | 2016.08.01 |
대구소년소녀관현악단 제41회 정기연주회 - 처음처럼. (0) | 2016.07.28 |
안동시 서후면 안동권씨 복야공파 관물당을 탐방 - 거경대학 - 오토산 (8). (0) | 2016.07.28 |
안동시 송현동 진주하씨 창열서원 탐방 - 거경대학 - 오토산 (7). (0) | 2016.0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