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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한개마을 응와종택을 찾아서
교라댁을 나와서 집옆 언덕위에 대감댁 입석이 세워진 응와종택을 찾았다.
한개마을(大浦里)은 星山李氏집성촌으로 성산이씨(시조 李能一), 正言公派
(파조 李汝良)로 조선 세종떼 진주목사를 지낸 이우(시조로 부터 15세손)가
처음으로 정착하여 500여년을 지켜오고 있으며 2007년 한개민속마을 지정,
인근에는 성산이씨,성산배씨,성산도씨등이 세거를 이루어 살아오고 있다.
凝窩宗宅은 사도세자를 호위하던 무관 이석문선생이 살던곳으로 사도세자가
죽은뒤 세자를 그리워하여 1774년(영조50)에 북쪽으로 사립문을 내고 은거했고
1821년(순조21)에 손자 이규진이 안채와 사랑채를 새로 지었고 사랑채는
그후 증손이며 공조판서겸 판의금시부사를 지낸 정현공 이원조에 의해 1866년
(고종 3)에 중건하여 현재 응와고택으로 불리우고 있으며
북비고택은 그 당시 앞에 노론집이 살아 드나드는것이 싫어서 대문을 북쪽으로
돌렸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으며 사랑채에는 여러개의 현판이 걸려있었으나
안채에는 현판이 하나도 없었다.
凝窩 李源祚(1792~1872)선생은 아버지 이형진, 어머니 함양박씨(빅닌경 딸)로
정언 이규진에게 입양되었고 1809년(순조9) 별시문과 을과에 급제하였고
1837년(헌종3) 정언으로 士族의 사치가 극심하고 흉년으로 만중들의 艱苦가 많아
쇄신책을 실시를 극간하였고 강릉부사,제주목사,경주부윤,대사헌,공조판서를 역임
하였고 종택에는 1865년(고종2,74세) 2월 용왕위 대호군겸 지의금부춘추관사로
임명되어 耆老社(60이상 임금,70이상 정2품이상의 정경이 참석)에 들어갔을때
창경궁 영수각에서 도화서의 화공들이 그린 초상화가 있었고
문집으로는 응와문집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응와고택을 돌아보고 종손분과 함께 사랑체에서 집안의 유래를 듣고
종손님과 상세한 설명을 하여주신 해설사님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오늘의 마지막 답사지인 세종대왕자태실을 찾아나섰다.
세상사 한마디
李源祚의 유훈
증조할아버지 李碩文의 無愧心 : 부끄러움이 없는 마음과
할아버지 李敏謙의 讀書種子 : 대대로 글을 읽는 씨앗의
가르침을 家法으로 학문에 힘쓰라 하였다.
할아버지 이민겸의 당호현판 "사미당"이동항의 전서
이원조의 아버지 이규진의 친필 현판 "농서"
이원조의 친필당호 "응와"
독서종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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