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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경대학에서 경주 옥산서원을 다녀와서
9월 22일 예정이던 거경대학 체험수련이 제17호 태풍 '타파'로 인하여 29일 열렸다.
시청앞을 출발하여 삼국유사휴게소에서 잠시 휴식, 11:00 옥산서원에 도착하였다.
옥산서원(玉山書院)은 회재 이언적선생이 돌아가신지 19년 지난 1572년(선조 5)에
경주부윤 이제민(李齊民)이 지방유림 뜻에 따라 창건, 1574년(선조 7)에 사액되고
정문인 역락문(亦樂門)을 들어서면 납청루(拉淸樓)에서 노수신이 선생의 유허에
맞게 주렴계贊 '풍월무변(風月無邊)'에서 취하여 고친 무변루(無邊樓)가 있었고
정면에 강당인 구인당(求人堂)에 양진(兩眞齋)와 해립재(偕立齋)가 있으며
강당뒤편 사당인 체인묘(體仁廟), 강당앞 민구제 (敏求齋), 암수재(闇修齋)가 있고
오른쪽으로 타 서원보다 넓은 고직사와 문집판각을 보관하던 건물들이 있었다.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 1491~1553)은 초명이 이적(李迪)이었으나 중종의 명으로
언(彦)자를 더하였으며 아버지는 이번이고 어머니는 경주손씨 손소(孫昭)의 딸이며
1514년(중종 9) 문과급제하여 1530년 사간원이 되어 김안로의 등용을 반대하다가
관직에 쫒겨나 자옥산 아래에서 학문에 전념하다 1537년 종부시첨정으로 나가서
1545년(명종 원년) 좌찬성이 되었으나 양재역벽서사건에 무고하게 연루되어 강계로
유배되어 '求仁錄', '大學章句保維', '中庸九經衍義', '奉先雜儀'등을 저술하였고
1553년 유배지에서 돌아가셨고 1569년(선조 2) 종묘의 명종(明宗)묘정에 배향되고
1610년(광해군 2) 문묘에 종사되었으며 1572년 옥산서원에 제향되었다.
회재선생은 하늘(天道, 天心) 백성(人心)에 순응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수양(養心,
敬心)에 힘쓸 것을 중요시 하는 도학적 수양론을 경세의 기본으로 삼았다고 한다,
서원현판은 소실된 구인당을 새로지어 1839년 헌종이 내린 추사 김정희 글씨이고
당초(아계 이산해)현판은 내벽에 걸려있고 퇴계선생과 한석봉이 쓴 현판들도 있었다.
구인당에는 어제 있었던 세계유산등재고유 집사분정이 걸려 있었고
서원관리위원장님은 문중과 서원의 유래에 대한 설명을 하시면서
세계유산등재 협약서 원본과 번역본을 보여주시며 상세한 설명을 하였다.
우리는 함께하신 류춘자회원님의 등재축하 내방가사을 읊은 후 다과를 마시고
서원관계지분들께 감사를 드리고 세심대와 용추를 지나서 독락당으로 갔다.
세심대(洗心臺)는 옥산서원 앞을 흐르는 자개천 가운데 자리한 너럭바위로 선생이
1532년 낙향하여 독락당을 지어 머물면서 주변의 산과 계곡의 이름을 붙였는
남쪽 舞鶴山, 서남 紫玉山, 서북 道德山, 서원뒤쪽 華蓋山과
洗心臺, 觀漁臺, 澄心臺, 濯纓臺, 詠歸臺 등 사산오대(四山五臺)라 불리며
그 중 마음을 씻고 자연을 벗삼아 학문을 구하던 곳이고
자개천물이 세심대를 감돌아 외나무다리가 있는 용추(龍湫)로 떨어지며
퇴계선생이 세심대와 용추에 글씨를 새겼두었는데 아직까지 남아 있었디.
세상사 한마디
하늘이 덮어길러주고 땅이 나를 실러 있게 하니 만물(萬物)의 부모가 아닌가?
아버지가 나를 낳고 어너미가 길러 주시니 이것이 나의 천지(天地)로다.
이 천지 저 천지 즈음에 늙는 뉘를 모르리다.
회재선생의 <樂天忘老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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