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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JC특우회 맑은 날 한국이 보이는 전망소 관광(7)

아까돈보 2024. 11. 21. 17:16

 슈시삼림길(森林道)에서 힐링을 하고 점섬을 먹은 안동JC회원들은

비가 오는 가운데 팔각정 한국전망소(韓國展望所)를 관광하였다.

1997년 완공한 한국전망소는 히타카츠항(港) 인근에 있으며 날씨가

맑은 날이나 야간 때는 한국을 볼 수 있느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처럼 비가 와서 전망소에서 한국 땅을 전연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망원경도 설치해 놓았으나 비 앞에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다. 

다른 한국 관광객들도 전망소를 많이 찾아 왔으나 우산을 쓴채 주변만

보고 갈 뿐이다.

전망소 안에는 전망소 내력과 조선역관수난비 등의 내용을 보여 주는

동영상을 방영하고 있다.

 

전망소에서 동쪽으로 약 10m 정도 떨어진 곳에 "조선역관수난비"가

비를 맞으며 쓸쓸히 서 있다.

조선 숙종 28년(1703) 음력 2월 5일 청명한 아침에 한천석(韓天錫) 등

역관(譯官) 108명과 일본 대마번사(對馬藩士) 4명 등 112명이 부산을 출발,

저녁 무렵 대마도 항구에 입항 할 무렵 갑자기 불어 닥친 폭풍으로 전원이

죽음을 당한다.

당시 한양(漢陽)을 비롯, 전국 각지에서 선임된 사절(使節)로서 대마도

제 5대 신번주(新藩主)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하여 파견된 국가외교사절단이었다.

당시 일본 애도(江戶)시대 쇄국체제 하에서도 일본이 유일하게 정식으로 국교를

유지한 나라가 조선이었다. 

그것은 여러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조선과의 신뢰를 지켜온 선린외교였다.

애도시대 조선의 역관이 대마도를 방문한 것이 무려 51회나 된다는 사료(史料)

기록이 있다.

험한 풍랑속에 묻힌 역관 일행의 배에는 4명의 대마번사도 승선하여 비운을

함께 했다.

비문에는 108명의 역관 이름이 나란히 새겨져 있다.

장문(長文)의 비문을 읽으니 안타깝기 그지 없어  애절한 마음이 아려오는 

것은 나만의 심정일까?

 

권희훈 가이드에 따르면 한국은 1960년대부터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으로

빨리빨리 문화가 발달하였지만 일본도 "오아시스운동"이 번져 먼저 상대방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자는 운동에 번졌다는 것이다.

즉 오: 오하이요고자이마스(대단히 감사합니다), 아 : 아리가도(안녕하십니까)

시: 시츠레이시마스(실례지만), 스: 스미마셍(미안합니다)이다.

 

일본의 '사무라이'(武士)들은 평민이 갖지 못한 특권이 있다는 것이다.

첫째 아무나 죽일 수 있다. 둘째 자신의 성과 이름을 가질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이름을 지어 줄 수 있다. 셋째 몸에 긴 칼이나 짧은 칼을 소지할 수 있다.

따라서 성과 이름이 없는 평민에게 성과 이름을 지어주고 죽을 때 할복

(割腹)하는 것이 최고의 죽음이다.

한국은 왕이 사약을 내려 죽이지만 일본은 할복하는 것이다.

요즘 세대는 많이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