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름을 더해 주는 신록의 계절 5월. 안동일선산악회는 5월
월례회로 영주의 금성대군신단과 소수서원을 다녀왔다.
5월 10일 오전 9시 안동영가초등학교 앞에서 모인 회원들은
자가용 차를 타고 목적지인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길 5에
위치하고 있는 사적 제491호로 지정된 영주 금성대군신단
(榮州 錦城大君神壇)을 향하여 떠났다.
안동에 살면서 인근 영주에 있는 소수서원은 자주 가보았으나
금성대군신단은 이번에 처음 가 보는 곳이다.
최근 "왕과 사는 남자" 영화가 홈런을 치자 회원 모두가 이곳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이날 실행에 옮기게 된 것이다.
소수서원에서 약 300m 떨어진 신단(神壇)이 국도변에 있어서
찾기가 아주 쉬웠다.
때마침 이곳 권화자 문화관광해설사의 도움을 받아 금성대군
신단에 관하여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권 해설사는 나하고 같은 안동권씨부호장공파이며 권오진
전 예안향교 전교 님의 따님이라서 더욱더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신단과 비석이 설치되어 있는 금성단(錦城壇)에 들어서니
푸른 잔디밭 위에 큰 비석 1점과 제단 3개가 보인다.
제단 중앙에 있는 것이 금성대군의 것이고 오른쪽 제단이
당시 영주 순흥 부사 이보흠(李甫欽), 왼쪽 제단은 이름 모를
선비의 것이다.
매년 봄, 가을 두 차례 걸쳐서 이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고 있다.
금성대군(錦城大君 1426 - 1457)은 조선 세종의 여섯째 아들로
단종의 작은 아버지이자 세조의 친 동생이다.
금성대군은 조선 세조 2년(1456)에 사육신과 함께 단종복위운동을
추진하다가 발각되어 순흥으로 유배되었다.
이듬해 순흥 부사 이보흠과 지역 유림들이 함께 다시 단종 복위를
계획했었다.
그러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거사를 추진했던 사람과 같이 죽임을
당했고 순흥부(順興府)도 폐지(廢止)되었다.
당시 순흥에는 금성대군을 신령처럼 모시고 있었기에 이 재단에는
신단(神壇)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후 조선 영조 18년(1742)에 경상감사 심성희(沈聖熙)가
단소를 정비하였다.
신단에서 서쪽으로 20m 가량 떨어진 곳에 1,100년 정도로 추정되는
높이 30m 크기의 은행나무가 있다.
이 은행나무의 잎이 마치 오리발처럼 생겨 압각수(鴨脚樹)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선 세조 3년(1457)에 단종복위운동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금성대군이
순흥에서 죽임을 당하고 순흥부도 폐지되자 이때 은행나무가 함께
말라 죽었다.
그후 세월이 흘러 나무에 새 가지가 나고 잎이 돋아나 조선 숙종 9년
(1683)에 순흥부도 다시 설치되었다.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소원카드에 내 소원을 써서 소원
걸이대에 달아두는데 무료로 소원카드와 볼펜, 끈이 항상 준비되어 있다.
안동 용계은행와 크기가 비슷한 이 은행나무를 구경하고 나서
해설사 직원들을 위해 단체 사진을 찍어 주기고 했다.
순흥역사기행에선 옛날 옷과 갓 등은 무료로 빌려주고 있어서 옛 옷을
입고 추억으로 남길 사진을 찍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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