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분주하게 또 얼마나 주어진 일에 매달려 살아왔는지 또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하면 허허롭게 살다간 무수한 선인들과 옛 조상들이 부러울 뿐이다. 그러나 어떻게 하랴,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성실히 살아가야 하는 것이 내게 맡겨진 일이라면 또한 그렇게 사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는가. 아까부터 울어대던 소쩍새들의 소리가 더욱 애절하다."(현대수필문인 101명의 대표작 중에서)
김재왕 원장의 수필 한 대목이다. 김 원장은 1991년 경북 안동시 동부동 김재왕내과의원을 개원한 후 20년 세월을 환자들과 함께 해 왔다. 사람에 관심이 많던 소년은 의사가 되어 환자들과 나누며 살아온 삶의 희노애락을 글 속에 담아내고 있다. 참 사람을 꿈꾸던 소년, 의사가 되다 김 원장은 2004년에 등단한 문인이다. "사람 사는 모습에 관심이 많은 소년이었어요. 법대를 가려고 했죠. 법대 가면 많은 사건기록을 통해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삶의 이면에 숨겨진 필연적인 이유들을 통해 다양한 삶을 볼 수 있을 거라고. 그런데 어느 날 한 친구로부터 의과대학이야말로 인간에 대해 철저하게 이해할 수 있는 분야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바뀐거예요. 사람은 정신과 육체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의학이야 말로 진정한 인간학이란 생각이 들면서 결국 그때 전환점을 맞아 의대에 진학했습니다." 의대를 다니면서는 시골의사를 꿈꿨다. 그러기에 개원전 교수 제안도 그의 마음을 바꿔놓진 못했다. 시골마을에서 한가로이 책을 읽다가 간호사가 "원장님 환자 왔어요"하고 부르면 진료하고 끝나면 또 책을 읽고 하는 여유로운 삶이 꿈이었다. "그렇게 보면 저도 꽤 성공한 사람입니다. 소박한 시골의사를 꿈꾸던 사람이 20년 동안 진료실을 지키며 많은 환자들을 만나왔으니 말입니다. 세상의 일반적인 기준이 아닌 순전히 제 꿈을 기준으로 봤을 때 말이지만, 참으로 감사한 일이죠." 환자를 통해 배우는 삶 김 원장은 늘 참된 인간상을 잃지 않는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일상 속에서도 참된 생활을 하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는다. 더욱이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서도 늘 배우려는 자세로 진료에 임한다. 눈에 보이는 자연도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볼 때는 자연의 모습 그대로 보이는데, 왜곡되는 순간 아름답게 보이질 않듯이 사람의 마음도 왜곡되고 어긋나기 시작하면 온통 불편과 불만이 생긴다. 잠도 안 오고 몸과 마음에 병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환자와의 대화가 중요하다. 모든 질병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니 대화 속에서 환자의 생각과 생활습관 등을 점검해 병의 원인을 찾아내고 좋지 않은 습관을 개선하도록 끌어준다. 환자가 아무리 많이 와도 이러한 본질에 충실하자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흔히 의사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라는 말을 하곤 한다. 사람에 대해 먼저 이해하고 의사가 환자 위에 군림하려하지 말고 약자인 환자를 배려하고 보살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의사의 의학적 지식도 강조하고 싶다. 의과대학에 다닐 때 배웠던 것만 믿고 있으면 안 된다. 살아가는 환경이 변하고 먹는 음식이 달라지고 생활하는 방식이 변하고 있으니 질병도 더 다양해지고 나타나는 양상도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료환경도 다변과 급변을 이어가고 있으니 의사로서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이유를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의사들이 주말마다 세미나와 연수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기회가 될 때마다 서울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렇게 공부한 것들이 진료에 많은 도움을 주지요. 특히 미국노화방지학회에서 공부했을 때 노화방지 최종시험까지 패스했는데 이 때 체계적으로 공부했던 것이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쉼'은 다시 채우기 위한 비우기 김 원장은 아침 운동으로 건강을 지킨다. 매일 아침 집 뒤에 있는 산에 오른다. "새벽에 해가 서서히 떠오르는 동녘을 바라보며 감사함을 고백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처럼 나도 그 모습을 잃지 않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기도 하고요. 여름에는 해가 너무 일찍 뜨니 자전거를 타죠. 산행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다보니 비 오는 날 산행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나무 사이에서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물 소리가 아주 환상이랍니다." 이렇게 생활 속에서 자기관리가 철저한 김 원장에게도 한 고비가 있었다. 개원 후 6개월이 지나니 가슴이 너무 답답해져 왔던 것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시골에서 환자 보는 것이 꿈이었는데 시멘트 건물에 들어앉아 있다보니 갑자기 회의가 느껴졌다.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졌고 기차가 떠나는 11시만 되면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는 증상이 나타났다. 그러기를 반복하다 결국 아내의 손에 끌려 남도 여행을 떠났다. 선운사에 올라 서너 시간 만대루 기둥에 기대어 앉아있다 보니 머리까지 올라있던 열이 주욱 내려가며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 열심히 달려오다 보니 열이 머리끝까지 꽉 차 있었던 것이다. 다시 진료실로 돌아온 후 자신을 위한 쉼의 시간을 허락했다. 매 주 수요일 오후에는 진료실을 떠나 전적으로 쉼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생각과 마음을 비우는 시간이며 가급적이면 어떤 것에도 점유당하지 않는 시간이다. 멍하게 있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것이야말로 정신을 차리는 시간이며 환자를 더욱 열심히 진료할 수 있는 힘을 재충전하는 시간임을 깨달았다. 이를 통해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며 잘못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너무 열중하면 잘못 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바람이 있다면 의사의 입장에서 환자와 상담하고 진료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이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규모가 작더라도 강한 의원이 되고 싶거든요. 환자에게 성실하고 환자 잘 볼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의원이 되고자 합니다. 자신을 생각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가지고 의사가 다가가면 그 진심을 알아주는 것도 환자들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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