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는 내동기들

퇴계선생의 가르침이 있는 곳 도산서원 - 오토산.

아까돈보 2015. 5. 19. 15:40

 

사진이나 동영상이 잘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하세요

http://blog.daum.net/uh512/8168

 

 

퇴계선생의 가르침이 있는곳  도산서원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시행하는 교양프로그램인 제7기국학아카데미에서 현장학습으로 

한국 유학의 연원이자 구심 역할을 하게 된 陶山書院을 찾았다.

 

 도산서당은 퇴계선생이 낙향 후진을 가르치기 위해 1561년에 지었으며

학생기숙사인 농운정사와 지원시설인 하고직사가 있었고 

도산서원은 1574년(선조7) 퇴계 이황(1501~1570)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림이

중심이 되어 창건하고 출입문인 진도문과 도서관격인 좌우의 광명실,학생기숙사인 

박약재(동재)와 홍의재(서재), 전교당,퇴계선생과 제자 월천 조목을 배향하는

제사공간인 상덕사,장판각,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 상고직사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575년 석봉 한호(1543~1605)의 글씨로 된 사액을 받아 한국 유학의 연원이자

역할을 하게 되어 서원의 형태.구성.기능과 의미.관리.체계등 모든면에서

도산서원이 다른서원보다 잘 되어 있다.

 

도산서원 건축구조의 특징은 퇴계가 주장한 "곧고 반듯하다(直方)"는 마음가짐을

이미지로 모든공간은 방형적(方型的)이고 직선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다.

불교시대인 고려의 화려한 장식적 건물과 달리 조선의 건물은 담백하고

검소하게 하려는 경향이 있어 대개의 경우 단청을 하지 않지만 단청을 하였고

대부분의 서원 묘당이 맛배형임에도 불구하고 도산서원의 상덕사는 팔작지붕이며

가로건물(전교당,정문,과 세로건물(동재와 서재)의 칸수를 (보통 가로건물은 홀수,

세로건물은 짝수의 칸수) 반대로 한것등이 특징이다.

 

대부분의 서원은 사후에 연고지(출생지나 근무지)에 세워졌으나 서당이 있던곳에

서원을 창건한것도 유일하며 정조때 도산별과를 시행하여 과거를 본적도 았다. 

지난 13일에 과거를 재현하여 200여명이 응시를 한적도 있으며

대부분 서원의 교육공간에는 좌측에 원장실, 우측에 교무실이 있으나

이 서원은 우측에 방이 한칸이 있다. 

 

한석봉의 고향은 개성의 먹적골이라 하고 나뭇잎이나 바위나 돌에 붓글씨를

많이 써서 비가 오면 먹물이 흘러내려 먹적골이아 불렀다는 해설과

옛날 격문이나 호소문에도 대표자가 서명하였으나  누가 주모자인지 알수 없도록

 참여한 사람이 사발모양으로 둥글게 돌아가며 하는 서명을 "사발통문"이라 전하며

옛날 양반은 군역을 면제 받았으나 강학 성적이 떨어지면 벌로서 군역에

임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해설도 있었다.

오늘도 새로운 상식을 익히며 배운는것이 즐겁다(學而時習之 不亦說乎아)

 

세상사 한마디

 퇴계는 자신의 할 일(吾事)을 이렇게 읊었다.
높은 곳에 머무는 것은 내 할 일 아니네(高蹈非吾事)

고향마을에 거처하면서(居然在鄕里)

착한 사람이 많아지길 소원하네(所願善人多)

이것이 천지가 제자리를 잡는 것이기에(是乃天地紀)

 착한 사람이 많은 사회에서 나쁜 일이 생길 리가 없고

이기심으로 인한 반목과 갈등도 사라질 것이다.

퇴계는 50대에는 계상서당에서,

 60대에는 도산서당에서 착한 사람을 길러냈고,

 그의 사후엔 제자들이 도산서원을 세워 그 뜻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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