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는 내동기들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내앞 큰종가 청계종택 - 오토산.

아까돈보 2015. 8. 12. 10:41

 

 

사진이 잘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8442

 

내앞큰종가 청계종택

이중환의 택리지에 조선에서 선비들이 가장 살기좋은 이상적인 마을로 도산,하회,

내앞,닭실마을을 손꼽았다는 내앞마을은 길지로 이름난곳이다.

 

의성김씨는 신라 마지막 경순왕의 넷째 아들이자 고려 태조 외손자인 의성군 석을

시조로 하며 안동에 입향한것은 9세손 공조전서 김거두가 아들 천과 함께 벼슬을

버리고 풍산에 입향하였다가 천은 안동시내 밤적골에 옮겨 살았고 그의 증손

김만근의 처가인 해주오씨가 임하에 살고 있어서 이웃인 천전에 정착하였다.

망계 김만근의 손자인 청계 김진(1500~1581)은 다섯아들이 선비로 일가를 이루며

명문기반을 다졌으며 '차라리 부서지는 옥이 될지언정 구차하게 기왓장으로 남아

서는 안된다(寧須玉碎 不宜瓦全)'는 가르침으로 후세에 임금에 직언하는 강직한

성품으로 금부도사를 수차례 부르는 명문을 형성했다.

내앞 큰종가인 이 집은청계선생의 불천위를 모시고 16C에 불타 없어진 것을 넷째

학봉선생이 명나라 사행길에 북경의 상류층의 주택을 圖本으로 그려와 지었기에

배치나 구조가 독특하다고 한다, 'ㅁ'자 안채와 '-'의 사랑채와 기타 부속건물로

연결되어 전체적으로 '巳'자형 평면을 이루고 안채는 다른 'ㅁ'자형 평면과 달리

안방이 외부쪽에 놓이고 커다란 대청하고 있으며 3단으로 구별되어  있다.

사랑채는 안채보다 외진곳에 배치되어 방문객이 행랑채를 거치지 아니하고

출입하게 되어 있고 정침(안채와 사랑채)의 구조는 1.6m가량의 좁은 기단위에

세워져 바깥채보다 높다. 사랑채에 이어지는 부속채는 2층구조로 윗층은

 서고로 사랑의 대청과 이어지고 아랫층은  뒷간으로 되어 있다.

 

표온 김시온(1598~1669)은 약봉 김극일의 손자로 병자호란 이후 출세를 단념

40년간 경학에 전념하여 문을 닫고 은거하였으며 와룡초당을 짓고 후진양성을

하였으며 '용모를 정재하고 언행을 삼가며 義와 利를 분별하여 취사(取捨)를

분명히 해야한다'고 하였다고 하며 긑내 숭정처사(崇禎處士)로 남아 길안면

구수리에 송정(松亭)과 숭정처사 유허비가 있다.

 

  대청마루에서 김창균 종손님과 대화를 하면서 집안의 유래에 대하여 익히는

 시간을가졌으며 종가에는 현판이나 시판이 게시되지 않은것은 글은 누구나

하는것이므로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며 집안에서 제일 아끼는 보물은

 청계선생 후손의 글씨를 모아 병풍으로 만들어서 사용하는 병풍이라 하였고

우리는 안채에서 대청으로 내다 볼수있는 쪽문과 사당이 종택의 서쪽 뒷편에

있는것을 돌아보고 안채의 대청이 3단으로 되어있어 양반사회의 신분제도를

알수있는 공간등을 구경하고 점심식사 장소로 향했다.

 

세상사 한마디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닌 '우리'로 사는 세상

자기의 몸 옆에 자기의 마음 옆에 두고 사시면

쉽게 떠나지 않으며 평생을 함께 하겠지요??

늘~~ 배려하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꽃을 피워보세요

 

 

 

 

 

 

 

안방마님이 식솔들을 거느리던 사회의 생활상을 알수있는곳

 

환기도 시키고 외부를 볼수있게 활용하던 쪽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