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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앞 작은종가 귀봉종택
우리는 청계종택을 들르기전에 이웃에 있는 내앞 작은종가 귀봉종택을
돌아보고 청게종택으로 향앴다.
내앞 작은종가 귀봉종택은 둘째 귀봉의 종가로 귀봉의 맏아들 운천 김용의
불천위가 모셔져 '운천종택'이라 부르기도 한다.
큰종가와 담을 경계로 이웃하고 있으며 정침은 'ㅁ'자형으로 정면 사랑채가
좌우로 돌출된 평면을 하고 있고 안마당,사랑마당,뒷뜰로 구분되어 있다.
운천종택에는 네가지 보물이 있는데 옥피리,문장검,연하침,매죽연이다.
경순왕 옥피리는 왕궁에 청.황 한쌍의 옥적이 있었는데 신라가 망하고
청옥적은 경순왕이 넷째아들 의성군 석(錫)에게 전해졌고 자손 대대로
전해져서 운천에게 전해지고 文章劍은 길이 40㎝정도로 양칼날인데
경순왕이 의성군에게 전해준것을 청계공이 문장답(文章畓)과 함께 글을
잘하는 자손에게 상으로 주기로 하여 옥피리와 함께 운천에게 주어진
것이며 6.25때 분실되었다고 하고 연하침(煙霞枕)은 길이 50㎝의 적갈색
윤기가 나는 목침으로 용이 구부려 앉은 모양을 하고 있고 운천의 손자
경와 휴(烋)가 금강산 유랑길 만폭동 청룡담서 지니고와 만든 베개이며
매죽연(梅竹硯)은 겉돌은 연옥색, 속바탕은 자색인 단계석에 조각한
일월연으로 매화와 대나무가 새겨지고 그사이 해.구름.산.사슴.거북등
십장생이 새겨졌으며 경와가 외조부 백암 김록으로부터 받은것이다.
운천 김용(1577~1620)은 외가인 일직 귀미에서 태어났으며 총명이 뛰어나
할아버지 청계는 경순왕이 의성군에게 주었던 문장보검을 상으로 주었고
'우리 집안의 희망이 너한테 있다'고 칭찬하였다고 한다.
퇴계선생의 손서로 26세에 향시에 장원하고 34세에 문과급제로 관직 역임
임진왜란때 안동수호장으로 항병을 일으켜 고장을 수호하고 의주로 피난한
선조를 호종(扈從)하며 기록한 호종일기를 남겼고 '나는 窮不失義 達不離道
라는 맹자의 말씀을 평생 마음에 새겨왔다. 너희들도 마음에 두어 잊지 말라'
라고 자녀들을 훈계하였다 하며 호종공신 이조판서에 추증되어 임호서원에
제향되었다.
관광이나 체험은 아는것 만큼 보인다고 하였는데 상식이 많이 부족하였고
귀봉종택은 건물을 돌아본후 청계종택에서 설명내용을 기록한것들임을
이해하시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다음 기회에 한번 들려보시길 바랍니다.
세상사 한마디
우리 한복문화는 임진왜란시 명나라 군사들에 의하여 변하였고
갑오개혁시 간편복장으로 변하면서 더욱 많이 바뀌었다.
그전 상투를 틀때 속알머리가 적고 주변머리가 많으면 상투가 이뻤으며
갓은 차양이 좁아지고 중절모자와 사냥모자가 생겨나고 조끼가 생겨났다.
요즘은 대머리의 정도에 따라 이마가 넓은사람, 속알머리 없는사람,
주변머리도 없는사람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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