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시 송현동에 있는 임천서원 탐방
안동시 송현동에 위치하고 있는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16호인
임천서원(臨川書院)을 탐방했다.
8월 24일 오전 이진구 학장(영남예술대학)과 나는 서울의
친구가 안동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안동시외버스터미널에서
기다리다가 도착시간이 30분가량 남아 있어서 이 틈을 이용,
인근 호암마을에 있는 임천서원으로 갔다.
나는 오랫동안 안동에 살면서 이곳에 임천서원이 있는 것을
처음 알았으며 안동인으로서 미안한 감 마져 든다.
사적 제170호인 도산서원은 자주 가 보았지만 임천서원은
처음 와 보는 곳이다.
시내 송현동 호암마을의 주택지를 지나 골목을 따라
언덕으로 올라가니 임천서원이 보인다.
계단을 따라 올라갔으나 입도문(入道門)이 잠겨있어서
조그마한 옆문으로 들어갔다.
주변에는 오래된 향나무와 각종 나무 그리고 풀들이 자라고
있었으며 특히 임천서원 강당 앞 마당에는 석창포(石昌蒲)가
자라고 있었다.
이 석창포는 학봉선생이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일본 대마도(對馬島: 쓰시마)에서 가져 온 것으로 430여 년째
의성김씨 종택과 임천서원에서 자라고 있다.
이 석창포는 창포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로 키가 작으며
흔히 물가에서 자라고 있는데 한약재로 사용되고 있단다.
우리 두 사람은 학봉의 위패를 모셔놓은 사당 숭정사(崇正祠)에
절을하고 주변을 둘러 보았는데 기와에는 와송(瓦松)과 풀들이
자라고 있었으며 보수를 해야 할 곳도 보였다.
서원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웠다.
경내에는 사당인 숭정사를 비롯하여 동. 서재(東. 西齋), 강당,
전사청(奠祀廳), 주사(廚舍) 등이 있다.
이 서원은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의 도(道)와
학문을 기려 조선 선조(宣祖) 40년(1607) 임하현에 세웠으나
광해군(光海君) 12년(1620)에 위패를 여강서원(驪江書院)에
배향함에 따라 서원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헌종(憲宗) 13년(1847) 사림에서 서원을 석문정사(石門精舍)
서쪽 엄곡에 다시 건립하였으나 얼마 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그 후 유림들이 1908년 이곳 호암마을에 임천서원을 다시 짓고
이듬해에 학봉의 위패를 사당인 숭정사에 봉안하여 봄, 가을로
제사를 지내고 있다.
김성일은 선조 1년(1568)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역임했으며 임진왜란 때에 뛰어난 공을 세우고 진주성에서
순국하였으며 시호(諡號)는 문충공(文忠公)이다.
이 서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곳에 안동역이 이 마을
부근으로 옮겨짐에 따라 현재 기차가 다닐수 있도록
교량을 가설하느라 공사가 한창이다.
시외버스터미널을 끼고 있는 이 호암마을에 안동역이
옮겨지면 이 일대는 엄청난 변화가 있을듯하다.
임천서원 강당 안내판.
임천서원 강당 표지석.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16호 임천서원.
임천서원 강당 앞 마당에 학봉 김성일이 일본 대마도에서 가져왔다는 석창포가 자라고 있다.
학봉 김성일의 위패를 모셔놓은 숭정사.
학봉 김성일의 위패. 우리는 이곳에서 절을 했다.
기와 위에 와송과 풀이 자라고있다.
응도재(凝道齋)
오수 폐수를 처리하는 종합오.폐수처리장이 있는 앙실지대.
안동역이 이곳 호암마을 부근으로 옮겨짐에 따라 철로 교량공사가 한창이다.
안동시 송현동 호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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