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마도에 첫 발을 내 디딘 우리 일행은 권희훈 가이드를 따라
이즈하라 시내를 관광하였다.
첫 째 방문지는 나카라이토스이(半井桃水) 기념관(記念館)으로
한국을 사랑했던 작가를 기념하기 위해 집을 개조, 개관하였다.
우리나라 춘향전(春香傳)을 최초 일본어로 번역, 일본 아사이 신문에
소개한 작가의 집을 기념관으로 만들었다.
이 기념관으로 들어오는 진입로는 고즈넉한 일본풍의 거리로 양쪽에
크고 작은 돌로 돌담을 쌓아 지금은 이름모를 덩굴이 돌담을 덮고 있다.
1985년 개관된 기념관은 나카라이토스이의 생애과 업적을 소개하는
전시실 및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토스이 작가는 대마도(쓰시마) 후추(현 이즈하라)에서 태어났다.
집은 대대로 쇼(宗)가를 섬기는 의사집안이다.
토스이 아버지는 경북 왜관에서 일했기 때문에 토스이도 한국말을
할 줄 알았다.
토스이는 메이지 15년(1882) 서울에서 임오군란(병사의 반란)의
현지 보도를 보낸 것이 계기가 되어 1884년 도쿄 아사이 신문에
입사 한다.
토스이는 이 전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다음해 아사이 신문
'오시츤보'를 발표하고 이후 시대물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유력한 필체로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이때 히쿠치이치요(樋口一葉)가 스무 살 때 소설가 지망 의지를
전하고 지도를 청하기 위해 토스이를 찾는다.
토스이 나이가 서른 두 살.
이치요가 토스이를 보자 한 눈에 반해 토스이를 연모하게 된다.
토스이를 연모하는 이치요의 마음이 25년이란 짧은 생애동안
토스이를 사랑한 것이 사후(死後) 발표된 일기(日記)에서 밝혀졌다.
토스이 제자이며 연인이었던 이치요는 메이지시대 최초 여류
소설가로 일본 근대 소설의 개척자로 알려져있다.
2004년 발행된 5천엔 권 지폐에 새겨질 정도의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그 녀의 소설을 번역한 책이 있다.
'치열하게 피는 꽃, 이치요' '나 때문에 해질 무렵, 무라사키'
등이다.
토스이는 다이쇼 15년(1962)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무덤은 도쿄의 한 절에 모셔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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