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는 내동기들

안동시 풍산읍 마애리 진성이씨 산수정 - 오토산.

아까돈보 2015. 9. 10. 23:24

 

 

 

사진이 잘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8525

 

풍산 마애리의 진성이씨  산수정(山水亭)

 

 

마애리는 진성이씨 마애(마래)파 집성촌으로 시조는 고려말 진보현리 李碩이고

아들 李子脩가 공민왕때 홍건적 난리를 평정하는 공을 세워 松安君에 봉해져서

마라촌(마애리)으로 옮겨살았고 그의 아들 운구는 예천 은풍,운후는 와룡 주촌에

옮겨 살았는데 운후의 아들 선산부사 이정이 세 아들을 낳아 맏이 우양은 두루파,

둘째 흥양은 마래파, 셋째 계양은 온혜파이다.

 

마애는 지형적으로 뒤로는 태백산지맥의 하지산줄기가 끝나는 지점으로 앞으로

낙동강이 흐르는 수려한 풍광에다 안동의 곡창인 풍산평야의 동쪽 변두리를

성벽처럼 에워싼 살기좋은 마을로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던 터전이며

송안군이 살던 곳에 무과급제하여 훈련참군을 지낸  증손 興陽이 다시 이곳에

 정착 그의 후손이 500년을 이어오면서 진사 14명 문과 2명을 배출한 집성촌이다.

 

山水亭은 호봉(壺峰) 이돈(李燉 1568~1624)이 영해부사로 좌천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산수정을 짓고 학문을 가르치던 정자로 세월이 흘러 퇴락하였는데

동아 김양근(1734~1799)이 쓴 상량문이 남아있어 당시에 중건하였음을 알수있고

그후 수차례 보수를 하였으며 마애(磨厓)마을 앞을 흐르는 낙동겅변의 울창한

 송림과 강건너 적벽삼봉(赤壁三峰)을 마주한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나즈막한

평지에 정남향에서 서쪽으로 조금 틀어 강과 송림이 보이는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돈은 훈련참군 흥양의 현손으로 임진왜란후 1601년(선조34) 명경과에 급제해

성균관전직등 여러벼슬을 거친후 헌납(獻納)이 되어 정인홍을 논척(論斥)하다가

영해부사로 좌천되어 1612년(광해군4) 관직을 버리고 돌아와 학문에 힘쓰다가

1623년 인조반정 직후 성균관직장으로 기용되었고 부모봉양을 위해 영천군수

재직중 병으로 세상을 마쳤다.

 

적벽삼봉(망천절벽)은 마애마을의 생김새가 중국의 망천(輞川)의 아름다움을

빼어 닮았다고 해서 망천이라 불렸고  망천절벽은 마애마을앞 낙동강 기슭에

길게 늘어선 아름다운 절벽으로 기암절벽과 강이 어우러져 한폭의 동양화와

같아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곳의 아름다움을 노래 하였으며

永嘉誌에 "절벽이 옥을 깍아지른 듯 여러봉우리가 삼면에 경치를 이루고

넓은들, 맑은모래. 그 경치와 기상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겠다"고 찬탄했고

조선시대에는 선비들이 강에서 선유(船遊)를 하였고 근세에는 학생들의

 소풍장소였으며 지금은 여름철 레프팅과 캠핑장소로, 문화유적 답사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이다. 

 

상리의 침류정을 돌아본 우리는 마애리에 있는 산수정과 선사유적지를 돌아보고

아침 저녁 찬바람이 부는 초가을 이었지만 술숲주변에 텐트를 치고 야영하면서

 

망천절벽과 주변의 문화유적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다음장소로 이동하였다.

 

세상사 한마디

어리석은 사람은 인영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사람은 인연인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사람은 스치기만해도 인연을 살려낸다.

다가오는 인연들을 진실하게 다하고 소중히 여기며

깊은 배려와 사랑으로 아람답게 가꾸어나가시길....

 

 

 

 

 

 

 

 

 

 

 

 

 

 

2007년 마애솔숲 문화공원조성사업시  구석기시대 유물 371점이 발굴되어

선사유적전시관을 건리바여 3~4만년전 후기 구석기시대의 문화상을 전시관에 전시하였다